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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나는 정말 자녀와 대화하길 원하는가?

2015.12.11

 

우리사회가 비록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의 기능이 약화되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상담을 하다보면 가족 내의 관계가 여전히 개인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감한다. 특히, 부모-자녀간의 대화는 그 자녀가 성장한 후에도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부모의 노력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연 나는 자녀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지를 반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선 내가 정말 자녀와 대화하길 원하는 부모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는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될 수 있다. 첫째는 부모가 자녀의 말을 경청하는지이다. 지금 우리 시대의 삶은 우리 부모세대의 삶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척이나 바빠졌고, 자연스레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를 시도해오는 아이의 얘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청은 단순히 아이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며, 또한 자녀의 비언어적 행동까지도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활동은 잠시 멈추어야 한다. 경청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둘째는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녀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가르치려는 대화」를 많이 한다. 이는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해라’, ‘~하면 안된다는 식의 즉각적인 반응을 하고, 심할 경우는 한 번만 더 그러면 ~를 못하게 할 꺼야라는 말을 한다. 이는 지시 및 명령조의 일방적 대화이다. 이러한 대화는 자녀들로 하여금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들 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한다. 만약 부모가 자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싶다면, 오히려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의 감정이 이해로 공감되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자녀와의 유대감이 커질 수 있고, 이 때 소통의 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이해하려는 대화」라 한다.








셋째는 자녀와의 의사소통을 시도할 때, 자녀의 발달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자녀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예컨대 고집이 세고 양보할 줄 모르는 미운 일곱 살 자녀,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는 부모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경우다. 이러한 시기는 아동 발달상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녀들의 발달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억지로 대화를 하려고 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 이럴 때는 자녀들의 발달 특성들을 이해하고, 자녀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 할 수 있음을 받아드려야 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아이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기다리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