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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행복한 왕자가 주는 위안

2018.02.27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미소짓는 모습
어린 시절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동상인 왕자는 인간 세상의 슬픔과 비참함을 내려다보며, 제비에게 부탁해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씩 인간들에게 내어줍니다. 끝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죽습니다. 아이였던 제겐 너무나 이상한 동화였습니다. 동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적처럼 찾아오는 행운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목은 <행복한 왕자>였습니다. 무엇이 그리 행복하다는 걸까요?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아는 ‘행복한 왕자’가 어린 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성장하면서 고통은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고통은 없앨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때면 늘 <행복한 왕자>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동화 속 어려움을 겪는 공주들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곤 합니다. 왕자라는 큰 행운을 기대하며 어려운 상황을 잠시 잊어보기도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반면, 고통과 슬픔을 아는 ‘행복한 왕자’는 엄청난 행운이나 환상을 주진 않지만 지그시 나를 지켜보고 함께 해줍니다. 그런 관심이 어려움 속에서도 한발자국 내디딜 수 있는 위안과 용기를 줍니다.
 
세상은 꿈과 희망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삶 또한 나름대로 힘겹고 고통스럽습니다. 대부분의 어른은 아이들은 아직 어려 삶의 슬픔과 고통을 모른다고 합니다. 또 어른이 되면 싫어도 알게 될테니 아이들에게 예쁘고 달콤한 세상만 보여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름답지만 처절하기도 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삶의 여러 모습 중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동화 <행복한 왕자>의 말미엔 하느님이 천사를 시켜 인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에 천사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나눠주고 유일하게 남은 행복한 왕자의 심장과 왕자를 돕다 죽은 제비를 가져옵니다. 거친 세상을 사는 아이들에게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심장’과 ‘누군가를 돕기 위해 열심히 날아다니다 죽은 제비’와 같은 귀한 존재가 필요할 것입니다.
 
나아가 아이들이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주길 바라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 가까이에서 행복한 왕자가 되어주고, 그 아이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행복한 왕자가 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모두가 지혜롭게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이현진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유아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