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없어 밤에는 환자들이 의료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습니다. 수술할 때는 발전기를 가동해야 할 정도입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병이 아니라 식사를 제대로 못해 입원한 채 굶어죽는 환자들도 적잖습니다".
기아의 나라 르완다에서 인술을 펼치다 잠시 휴가차 한국을 찾은 의사 이규인(54) 자원봉사자의 이야기는 놀라운 내용들로 가득했다.
"한번은 에이즈와 굶주림으로 사경을 헤매던 12세 소년이 병원에 왔으나 며칠만에 숨졌습니다. 저는 처음 그 소년이 50대 중년인 줄 알았습니다. 부모·형도 모두 에이즈로 죽는 바람에 치료는커녕 제대로 먹지도 못해 숨지고 만 것이지요".
산부인과 전문의인 그는 주로 임산부와 아이들을 진료한다.
"수술 때 피를 흡입하는 기계가 낡아 거즈로 피를 닦아냅니다. 하지만 그마저 부족해 흥건해진 거즈를 짜 재사용해야 할 정도입니다".
이규인 자원봉사자는 1994년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면서 기아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전문분야의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의료인력부족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굿네이버스 르완다의 한 사업장인 레메라루꼬마 병원은 르완다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도립병원이지만 현지인 의사라고는 전문의 1명과 일반의 2명이 전부이다. 굿네이버스는 2000년도부터 이곳에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를 파견하여 현지의료인을 양성하고 당장 생사를 다투는 환자들을 진료해오고 있다.
이규인 봉사자는 2001년도 9월에 굿네이버스 의료봉사자로서 이곳에 파견되어 하루 9시간씩 환자를 돌보아 왔으며, 르완다 유일한 한국인 의사이다. 처음 봉사 계약 기간은 1년. 그러나 그는 귀국하여 잠깐 동안의 휴식을 끝낸 뒤 이번주(11월 12일) 부인(51)과 함께 다시 르완다로 돌아갔다. 봉사기간을 스스로 다시 1년 연장한 것 것이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의술과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열정을 접한 현지인들은 의료인, 환자 할 것 없이 입을 모아 그를 칭찬한다.
이규인 자원봉사자는 르완다로 가기 전에 18년간 개원의로 일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갈수록 허전해졌고, 자기 희생이 부족한 때문임을 깨달았다.
드디어 2000년 3월, 그는 "나이 더 들기 전에 일을 저질러야 한다"고 결심해 병원 문을 닫았고 국내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었다.
그러다가 2001년도 인도 지진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굿네이버스 긴급구호의료봉사단의 일원으로 흔들리는 땅, 인도로 내달리며 굿네이버스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굿네이버스 르완다의 레메라루꼬마 병원지원사업을 접하고 드디어 그의 마음에서 허전함이 사라졌다.
"잠시 한국에 들러서 동료 의사나 친구들로부터 고생 많이 했다는 인사를 듣습니다. 하지만 제겐 고생이 아닙니다. 식사 한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게 됐습니다. 솔직히 말해 전에는 형식적으로 식사 기도를 했으나 지금은 진짜 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잠시 한국에 휴가차 들어온 그의 이야기가 입소문이 나면서 취재를 원하는 언론의 접촉이 쇄도했으나 그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저와 제 아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무슨 방송입니까?"
타인의 칭찬과 주목에 집착하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원봉사자, 사랑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그에게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