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네이버스의 든든한 '엄마' 후원자 김숙자씨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은 자랑거리겠지만 김숙자(58·강원도 삼척시·청운초 교사)씨에게 고 심민정(사망 당시 25세)씨는 유난히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세 딸 중 맏이답게 언제나 믿음직스러웠다. 공부 한 번 제대로 봐주지 못했어도 서울대에 단번에 합격, 엄마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준 딸이기도 했다. 그래서 김씨는 졸업을 앞둔 딸이 “NGO에서 봉사를 하는 게 꿈”이라고 진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민정씨는 정말로 NGO인 굿네이버스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그리고 그해 12월, 딸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났다.
그로부터 5년. 김씨는 자식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딛고, 딸이 남기고 간 ‘나눔의 씨앗’을 두 배, 세 배로 불려 주위에 퍼뜨리고 있다. 그는 “민정이는 마지막까지 이 엄마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간 아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김씨를 강원도 삼척시의 자택에서 만났다.
▲ 굿네이버스의 봉사단원이었던 고 심민정씨의 어머니 김숙자씨가 편지를 읽고 있다.
‘심민정 장학금’으로 공부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이 보내온 감사의 편지다.
#1 “이건 제가 젊을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에요.” 민정씨는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어머니에게 얘기하곤 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NGO에서 활동하겠다고 했을 때도 김씨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렇게 2006년 2월 민정씨는 굿네이버스의 해외자원봉사단 GNVol 17기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됐다. 민정씨는 그곳에서 굿네이버스 직원과 함께 ‘여성교육문화센터’사업을 맡아서 진행했다. 그곳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나중에 전해줬다. 민정씨가 전혀 다른 그곳 문화에 얼마나 잘 적응했는지, 지역 직원들을 존중하며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었는지를.
#2 봉사활동이 거의 끝나가던 2006년 9월 13일, 민정씨는 “몸이 좀 피곤하다”며 휴식을 요청했다. 당시 유행하던 환절기 감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흘 간의 휴가를 마치고도 몸은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일주일 뒤 찾아간 아프가니스탄 국립병원에서 ‘A형 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흔한 병이었다. 그러나 민정씨에겐 치명적이었다.
“아파서 한국에 온다길래 걱정을 하긴 했어도 자기 발로 걸어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들것에 실려서 왔더라고요.”
한국 측 긴급 수송비행기가 없어 유엔의 도움 하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두바이로, 두바이에서 한국으로 빙빙 돌아와야 했다. 치료는 신속하게 시작됐지만 소용없었다. 발병 석 달 만에 민정씨는 이 세상과 이별했다. 그녀 나이 겨우 25살이었다.
#3 민정씨는 공항에서 들것에 실려 나오던 순간에도 “엄마, 전 제가 지금까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딸이 죽고 난 뒤 김씨의 머리 속엔 그 모습이 자꾸 맴돌았다. 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받았던 사람들의 사랑을 대신 돌려줘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민정이가 입원하고 있을 때 피가 많이 필요했어요. 헌혈증을 구해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다음날 굿네이버스와 주변 분들이 600여장을 모아다 주더라고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딸이 봉사하던 굿네이버스에 월 10만원의 정기 후원을 시작한 건 그래서였다. 민정씨가 엄마에게 보냈던 이메일의 한 구절이 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기부, 후원문화가 더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잖아요. 그러니 이때 엄마도 후원자 발굴에 앞장서서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힘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데 일조해주세요.” 김씨는 딸의 사연을 담은 홍보물을 직접 만들어 돌렸다. 그렇게 후원자로 만든 사람이 지금까지 모두 25명이다. 이런 김씨의 활동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던 남편 심하진(61)씨도 최근 아프리카 아동을 결연후원하기 시작했다.
김씨의 집 거실 한켠에는 제법 커다란 액자가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통의상을 입은 다섯 명의 여인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김씨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우리 딸들”이라고 말했다. 의대에 다니고 있는 딸, 페르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딸 등,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들을 마치 친딸인 듯 자랑했다. 다름아닌 ‘심민정 장학금’ 수혜자들이었다. 여성인재를 육성하고 싶었던 딸의 뜻을 기려, 김씨가 조의금과 딸을 위해 모아뒀던 돈 등 3000만원으로 만든 장학금이다. 2009년 3명에게 지급하기 시작해 지난해 5명, 올해도 5명에게 지급했단다.
김씨는 언젠가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민정씨가 활동한 여성문화센터를 보는 게 소원이다. “지금도 민정이 얘기를 하면 눈물이 나요. 하지만 그곳 사람들이 원망스럽거나 싫어서 흘리는 눈물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사람들은 민정이가 제게 남기고 간 소중한 사람들인 걸요.”
글·사진=이예지 중앙일보 행복동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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