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출한 엄마·무심한 아빠…어린남매는 오늘도 “배고파요”
잘 씻지도 먹지도 배우지도… 악취·파리떼 날리는 집에서
보듬어줄 품도 없이 또 하루
4살 아들 ‘성장장애’ 진단에 치료커녕 단체 도움도 거부
“때리지도 않는데 웬 학대냐”
≫ 지난 21일 집 안이 엉망인 전북의 한 가정집에서 승미(왼쪽)와 승철이 남매가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혼자서 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올해 4살인 승철(가명)이는 아직도 ‘아빠’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버바, 어바이…으앙~”이라는 알아듣지 못할 말과 울음으로 간신히 의사를 표현할 뿐이다. 키는 60~70㎝ 남짓에, 몸무게도 10㎏이 채 안 되고, 아직 용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언뜻 보기엔 이제 갓 돌을 넘긴 아기일 뿐이다. 어디서 다쳤는지 이마가 깨지고 앞니가 부러진 승철이는 콧물이 뒤범벅된 채 맨발로 마당을 서성이다 낯선 사람을 보자 두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고 보챘다.
승철이 누나 승미(7·가명)는 아직 제 이름도 쓰지 못한다. 3주째 감지 못한 머리가 자꾸 눈을 찌르는지 아프다며 충혈된 눈을 연방 비벼대던 승미는 기자가 빵과 귤을 건네자 번갈아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승미는 “아침엔 밥에 김치만 먹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승미 역시 때에 잔뜩 절어 있는, 철에 맞지 않는 얇은 바지와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 있었다.
승미와 승철이 남매는 전북의 한 농촌 마을에 산다. 30여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어린아이는 승미와 승철이밖에 없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지난 21일 남매의 집을 찾았을 때,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더러운 흙집에는 때아닌 파리가 들끓었다. 반찬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냉장고에는 아이 키우는 집에 흔한 우유 한 병조차 없었다.
남매의 아버지 이병석(46·가명)씨는 “정신지체가 있는 아내가 승철이를 낳고 가출한 뒤 혼자서 아이들을 기르느라 힘들다”고 했다. 이씨는 “근처에 사는 친척이 아이들을 돌봐준다”고 했지만, 남매는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고 ‘방치’된 듯 보였다. 몇 년 전 사고로 머리를 다친데다 팔마저 불편하다는 이씨는 “아이들 앞으로 다달이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 5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라며 “가끔 이웃의 논·밭일을 거들어주고 쌀을 얻어다 먹는다”고 했다.
“승철이가 벌써 4살인데, 왜 말을 못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아이가 늦돼서 그러지 뭘…”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러나 승철이는 지난해 10월 이미 ‘성장장애’(사립체 질환)라는 진단을 받은 터였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지 이씨는 “애들이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난해 11월 아동보호전문기관 굿네이버스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승철이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지만, 이씨는 “고구마 캐는 이웃을 돕기로 했다”는 따위 핑계를 대며 4번씩이나 승철이의 진료예약을 펑크내버렸다.
“아이들을 좀더 잘 돌볼 수 있도록 보호시설에 맡길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지만, 이씨는 “아버지가 있는데, 왜 아이들을 떼어놓느냐”며 “사정이 좀 어려워 그렇지, 아이들을 굶기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1년 반 전쯤 이웃 주민의 제보로 승미·승철이 남매의 방임 사실을 파악했다는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아이들이 전형적인 ‘방임학대’를 당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아이들을 때리는 것도 아닌데 웬 학대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방임학대를 인정하지 못하니 개선책을 내놔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환경에선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결국 또다시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승미는 “나도 예쁜 언니 따라서 서울 가면 안 돼?”라고 속삭이듯 물었다. “동생은 어쩌고?” 기자가 되묻자 승미는 “동생도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며 “서울에 가면 맛있는 케이크를 잔뜩 먹고 싶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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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폭력’ 방임·정서학대가 70%
대부분 가정형편 어려워 돌봄 못받는 아이들은
커서도 저소득층 악순환

지난 1998년 4월 세상에 알려진 ‘영훈이 남매 사건’은 전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당시 아동학대 제보를 받은 한 언론사 취재진과 아동보호단체 활동가들이 경기도 의왕시의 한 집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발견된 6살 사내아이 영훈이는 2주일 동안 밥을 굶은데다 발은 젓가락에 찔린 상처로 부어있었고, 등에는 다리미로 지진 자국이 있었다. 학대를 당한 건 영훈이만이 아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영훈이 부모가 영훈이 누나를 굶겨 죽인 뒤 집 앞마당에 묻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엽기적인 이 사건은 아동학대를 가정 내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인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다. 이를 계기로 2000년 아동복지법이 전면 개정돼,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생기는 등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정비됐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13년이 지난 지금도 아동학대는 줄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0’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를 보면, 최근 5년 동안 아동학대 건수는 7000~8000건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방임이나 정서 학대 같은 소극적인 학대는 아동학대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통계 수치로 나타나는 아동학대보다 드러나지 않은 아동학대가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1년 3분기 아동학대현황>을 보면, 전체 아동학대 건수 가운데 신체 학대와 성적 학대 등 적극적 학대는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는 방임과 정서 학대 같은 소극적 학대였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방임학대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고, 주변 사람도 선뜻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소극적 학대는 대부분 부모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2010’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를 보면, 학대 행위자 가운데 무직(26.0%)·단순노무직(15.1%)·비정규직(6.9%) 등 소득수준과 고용안정성이 낮은 경우가 절반에 달했다. 소득이 낮으니 부모가 맞벌이를 해야 하고, 어린이집이나 학원에 보낼 돈이 없어 아이들을 ‘방임’하게 되는 것이다. 직업이 없거나 병이 있으면 가족 내 갈등이 증폭되는 데, 이런 스트레스를 자녀에게 정서 학대라는 형태로 표출하는 경우도 흔하다.
소극적 학대가 적극적 학대보다 재학대율(학대로 치료를 받은 뒤 또다시 학대를 하는 비율)이 높은 이유도 경제적 형편이 쉽게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적극적 학대는 병원 치료와 교육으로 개선할 수 있지만, 소극적 학대는 경제적 상황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나아지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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