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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이웃이야기

좋은 이웃과 열어가는 새날

2016.09.09
혼자가 아닌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이 좋은 이웃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특집에서는 해외 곳곳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마음을 더하며 좋은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굿네이버스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첫 해외사업국에서 보게 된 우리의 미래

굿네이버스는 창립 초기부터 해외구호개발사업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어디서 먼저 활동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며 조사하던 중,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아 매년 태풍과 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는 방글라데시가 굿네이버스의 첫 번째 해외사업국으로 결정됐습니다. 굿네이버스는 1997년 굴산 가정개발사업장(Gulshan Family Development Project) 밧타라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굴산 지역 빈곤가정 아동들에게 정규교육과 장학사업을 진행했습니다. 20여 년 전 열정을 갖고 시작된 순간들을 고스란히 지켜봐 온 주인공, 난투(Nantu Gopal Das) 씨는 밧타라 빈민가에 위치한 밧타라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난투 씨가 굿네이버스와 인연을 맺은 때도 사업의 시작과 맞물린 1996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1979년부터 밧타라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웠어요. 그때 마침 지역사회를 위해 구호활동을 시작한 굿네이버스를 알게 된 거예요.”
학교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활지도, 영양지원, 아동권리옹호활동 등 사회개발교육이 실시됐고,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건강 상태도 매우 좋아졌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고, 미신에 의존했던 지역주민들은 굿네이버스의 인권교육과 건강 프로그램 등을 통해 긍정적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현재 밧타라초등학교에서는 643명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으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열정과 노력이 더해진 결과 정부에서 실시하는 공인시험에 100% 합격률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20년 동안 밧타라초등학교의 교사로, 굴산 가정개발사업장의 조합원으로 지금까지 함께 참여하고 있는 난투 씨는 학교관리위원회를 조직하고 끊임없이 아동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를 통해 지역의 변화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굿네이버스가 없었다면 이 학교도, 지금의 모습도 없었을 거예요.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굿네이버스와 함께 일한 사람으로서 회원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1996년 굿네이버스와 인연을 맺은 난투 선생님은 굴산 가정개발사업장 밧타라초등학교에서 현재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전에서 만난 한 송이 희망

방글라데시가 굿네이버스의 첫 해외사업국이라면 한국 NGO 최초로 긴급의료구호사업을 펼친 나라, 르완다에서는 어떤 좋은 이웃을 만났을까요? 1994년 일어난 내전으로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던 르완다 소식에 굿네이버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이일하 사무총장(현 이사장)은 긴급히 의료구호팀을 조직하고 르완다 서북쪽 대규모 난민촌으로 향했습니다. 현재 고등법원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실베스터(Sylvestre Mulindabyuma) 씨도 그때 당시 난민보호소에 있었고, 낯선 한국사람들과 그렇게 처음 만났습니다.
“집단학살과 내전으로 피신해 온 곳이 콩고민주공화국의 루가리(Rugali) 난민보조캠프였어요. 카키색 조끼를 입은 굿네이버스라는 곳에서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실베스터 씨는 자신들을 돕기 위해 찾아와준 굿네이버스에 마음을 열고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난민캠프 안에 마련돼 있던 텐트(막사 같은 임시거처)가 정말 부족했어요. 그리고 물과 음식, 의료품도 절실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다가와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주려고 노력하는 굿네이버스의 태도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곡물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식량을 공급한 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직접 조리해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난민캠프 안에서 정하고 활동하도록 했습니다. 아울러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지원도 이어졌습니다.
“굿네이버스는 우리가 안전한 식수와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죠. 또 교육할 공간을 만들기 위한 나무, 못 등 자재는 물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재원을 수소문해 지원해주었습니다.” 실베스터 씨는 구호단체의 손길이 거의 없던 시절, 굿네이버스가 르완다에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어렵던 시절 어떤 보상도 없이 르완다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보여주신 사랑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난민구호활동에 힘써주시고, 지역개발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도 부탁드립니다.”
실베스터 씨는 1994년 긴급의료구호사업을 위해 르완다를 방문한 굿네이버스 이일하 이사장(왼쪽사진 좌측)을 만났다.
현재 실베스터 씨는 고등법원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좋은 이웃의 후원은 내 인생의 키

1994년 내내 르완다에서 난민 긴급구호활동을 진행했던 굿네이버스는 케냐의 나이로비를 거쳐 르완다 인근 국가였던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아프리카 지부 설립을 준비하며 이런 지정학적인 배경을 고려해 1995년 12월, 케냐에 굿네이버스 최초의 아프리카 사업장을 세웠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온 NGO는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굿네이버스 케냐지부에서 무쿠루(Mukuru) 지역개발사업(Community Development Project)을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 매니저 다니엘(Daniel Nzyoka) 씨에게도 한국은 생소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다니엘 씨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좋은 이웃은 그의 작은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저는 8남매의 막내예요. 제 위로 누나가 7명이나 있죠. 아버지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혼자 남은 어머니 홀로 저희들을 돌봐야 했어요. 학교를 다니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집안 형편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다음을 내다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수혜아동 중 한 명으로 저는 굿네이버스의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제게 찾아온 행운이었어요.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숙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굿네이버스의 지원금은 학용품, 학비를 비롯해 제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부분들도 함께 채워주었죠.”
다니엘 씨는 좋은 이웃의 나눔으로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자신이 받은 도움을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자신에게 인생을 설계해나갈 수 있는 희망을 선물해준 후원자처럼 NGO 워커가 되어 희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2008년 다니엘 씨는 굿네이버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졸업 후에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 2010년 굿네이버스 케냐 지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지역사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조합을 운영하고 주민들과 함께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교육을 받고 제 일을 찾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 어머니께서 정말 행복해 하세요. 좋은 이웃이 제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줬습니다.”
어느덧 결혼을 해 아이, 부인과 도란도란 지내고 있는 다니엘 씨는 그렇게 다른 이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고향 친구들과 함께 있는 다니엘 씨(왼쪽 사진 가운데). 그는 학창시절 굿네이버스의 지원을 받았고
현재 굿네이버스 케냐 지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봉사로 얻은 값진 깨달음

좋은 이웃이 되게 해달라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26살 청년도 있었습니다. GN Vol(Good Neighbors Volunteer, 해외 자원봉사단) 1기로 방글라데시에 파견됐던 권영목 단원이 그 주인공입니다. 1997년, 당시 권영목 단원은 대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굿네이버스는 무작정 전화를 걸어 해외자원봉사를 가고 싶다는 한 청년의 무모하지만 열정적인 모습에 사무실로 한 번 오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고향인 포항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던 권영목 단원은 서울로 바로 올라와 굿네이버스를 찾았습니다.
“굿네이버스 면접을 보고 온 후 며칠 뒤에 전화가 왔어요. 방글라데시와 르완다 두 군데에 해외사업장이 있는데, 르완다는 내전으로 위험하니 방글라데시로 갈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죠.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방글라데시로의 봉사활동이 확정된 후, 굿네이버스가 어떤 단체이고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한 달 동안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두캠페인을 함께 해보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지원하며 굿네이버스의 비전을 몸으로 익히고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후 1997년 3월, 권영목 단원은 방글라데시 땅을 밟았습니다.
“제가 가장 깊게 관여했던 부분은 농업프로젝트였어요.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에서 5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시라지간지 농업개발사업장에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농업교육과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건물을 세우는 데 투입됐습니다.”
컴퓨터 전공자인 권영목 단원은 다른 설계도면과 책을 보며 설계도를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역청년들과 함께 땅을 일궜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지낸 8개월 동안 완성된 건물을 보지는 못했지만 지역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흘린 땀만큼 마음도, 사랑도 깊어졌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이들의 생활을 변화시켜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업과정을 지켜보면서 의구심은 확신이 됐습니다. 지역에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한 고민과 이를 풀어나가기 위해 현지 대학교수나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자문을 구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많은 것을 보고 성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권영목 단원을 포함해 GN Vol 1기로 방글라데시에서 활동한 단원은 총 3명. 각자가 위치한 곳에서 서로의 비전을 나누며 나눔의 가치를 이야기했던 그 시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걸 깨닫게 됐습니다. 직접 경험했을 때 느끼고 배우는 그 이상의 것, 나눔의 가치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시라지간지 농업개발사업장의 교육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설계도를 그렸던 권영목 단원(왼쪽 사진 우측)은
지난 8월 쌍둥이 두 딸과 함께 굿네이버스 본부를 찾았다
탄자니아 은두타 캠프에서는 난민들의 자립을 위해 직업훈련 등을 통한 역량 강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함께 잡은 난민의 손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좋은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2015년까지 부룬디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했고, 부룬디 난민들의 상당수가 탄자니아의 은두타 캠프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탄자니아 은두타 캠프에서 필드 오피서(Field Officer)로 일하고 있는 유엔난민기구(이하 UNHCR) 찰리(Charlie Brewah) 씨는 난민들의 권리보호와 프로젝트를 조율하고 자립지원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난민캠프는 UN과 다른 비정부기관들이 난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해 설치됩니다. 은두타 캠프에는 현재 약 5만3000명의 난민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설립된 이 캠프에 굿네이버스도 난민지원사업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난민캠프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최소한의 물자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생계지원 프로그램이 난민들에게 정말 필요합니다. 생계지원 프로그램은 난민들의 경제적 자립과 주체적인 삶에 영향을 주고 있어 저희 UNHCR에서도 굿네이버스와의 협력을 매우 환영하고 있습니다.”
캠프 안에서는 텃밭 가꾸기, 직업훈련을 통한 역량 강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난민들이 경제적 자립심을 갖고 존중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찰리 씨는 굿네이버스가 지금처럼 난민들을 향한 소득증대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굿네이버스는 조직적이며 확실한 목적을 갖고 사업을 수행합니다. 굿네이버스의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소득증대의 기회를 제공해 난민들이 자신의 국가로 돌아갔을 때 정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와 같은 생계지원 프로그램은 캠프 내 성폭력 예방과 토착민들과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만큼 굿네이버스의 지원사업이 난민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됩니다.”
난민들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 좋은 이웃은 다른 국제 기구들과 함께 난민들이 자립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힘을 더하고 있습니다.
손혁상 교수는 굿네이버스 말라위 옥수수 소득증대사업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의식 변화와 역량 강화하는 성과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같이 잘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스스로 일어난다는 것, 그것은 지역주민들에게 의식을 심어주고 이를 통한 변화가 일어날 때 달성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자립 의지를 주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좋은 이웃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장 손혁상 교수(한국국제개발협력학회장)는 ‘할 수 있다’와 ‘함께 잘 살 수 있다’라는 인식을 지역주민들에게 갖게 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손혁상 교수는 굿네이버스가 말라위에서 펼치고 있는 옥수수 소득증대사업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사업의 효과성과 보완해야 될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했습니다. 말라위 소득증대사업은 지역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조직활동을 연구해나가면서 지역개발위원회(Community Development Committee)를 조직해 직접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협동과 자립의 문화가 형성돼 있지 않은 말라위의 현실을 생각했을 때 주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역량이 강화됐다는 성과를 이룬 것은 아주 긍정적입니다.”
손 교수는 협동조합 설립과 창고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옥수수를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면서 주민들과의 신뢰가 형성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소득증대사업을 기획한 점은 매우 희망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더불어 지역사회가 지속가능한 개발을 돕기 위해 조합을 구성하고 이해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이 우리의 책무인 것은 분명하지만 계속해서 지원을 받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해당사자인 지역주민들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적정한 이윤과 공정한 배분을 실시하는 사회적 경제를 세워가는 것은 지역사회 자립을 위해 유용한 발전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접근을 통해 주민들이 기본적 생활조건을 갖고 나아가 지역의 민주적 질서를 확보하는 토대가 마련된다면 국제개발협력사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세상을 위한 좋은 변화는 주는 것을 넘어 그것을 딛고 그들만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참여하는 좋은 이웃들과 함께 앞으로도 지구촌 이웃을 향한 희망의 약속을 지켜나가겠습니다.
컨텐츠기획팀 채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