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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이웃이야기

황석영 작가와 겸상했습니다

2016.05.11
‘1권 1식’ <황석영의 밥도둑> 결식 아동에 인세기부하는 황석영 작가와의 만남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황석영 작가의 신간 <황석영의 밥도둑>은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은 에세이입니다. 음식의 종류로 말할 것 같으면 고향 어머니의 그리운 손맛부터 타향살이에서, 수감 중에 그리고 북한 땅에서 맛본 음식까지 그 수가 다채롭습니다. 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고희의 작가가 만난 갖가지 먹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것이 그저 음식 소개나 자랑이 아닌, ‘사람 관계의 원천’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은 에세이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의 밥도둑> 한 권은 밥 한 공기가 되어 굿네이버스의 결식아동지원사업에 소중히 후원되는데요. 따뜻한 밥 한 끼를 이웃과 나누고 싶은 작가의 뜻에서 시작된 나눔인지라 ‘진정한 밥도둑은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는 맛이다’라던 책의 한 구절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맛깔스런 일화를 하나 둘 읽다 보면 황석영 작가님과 한상에 둘러 앉아 밥 한 그릇 나누고픈 마음이 절로 드는데요.

굿네이버스가 좋은 이웃들을 대표해 작가님과 겸상할 특별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4월의 어느 저녁, 거장을 만난다는 설렘 반, 음식에 대한 기대 반으로 작가님이 자주 찾으신다는 밥집으로 향했습니다.
 
“갑자기 행복해지죠? 음식이 진짜 근사해.”
 
도착한 곳은 저렴한 가격에 십 수 가지 나물 반찬이 나오는 한식집이었는데요. 작가님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이야, 맛있겠다’를 연발하며 먹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한 갖가지 찬들로 풍성한 식탁. 오늘의 스페셜 메뉴 ‘코다리 찜’, 게다가 제철에만 맛볼 수 있는 나물들이 속속 등장해 밥상은 더욱 특별해졌습니다.
 
오늘의 특별 메뉴, ‘코다리 찜’입니다.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쯤 작가님의 추천이 들어옵니다.
 
“요거는 세발나물이에요. 매실하고 들깨하고 넣고 무친 건데 아주 맛있어요.”
 
“이건 가죽(나물)인데 들어봐요. 가죽나무의 새순인데 요 때만 딱 나와요.”
 
작가님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반찬들을 음미해봅니다. 아껴 먹는다고 먹었는데도 어느새 밥이 동났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모두들 밥 한 그릇씩을 추가합니다. 어느 정도 시장기가 가시자 분위기가 풀어지고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이날의 겸상에 앞서 굿네이버스 공식 SNS를 통해 좋은 이웃들의 질문을 받았는데요. 그 중 몇 가지를 선별하여 작가님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먹고픈 음식

정말 다양한 음식을 맛보셨던데, 책 출간 후에 다시 드셔 보고 싶었던 음식이 있었나요?
 
(황석영 작가, 이하 '황') 옛날에 남도 지역으로 돌아다니면서 먹었던 젓갈들이 맛있는 게 참 많아요. 지금은 많이 변질됐고 없어졌어요. 그 중 대표적인 게 토하젓이라는 건데, 요즘 나오는 토하젓은 뭉그러져 있는 게 많은데 본래 토하젓은 새우 모양이 다 살아있어야 하거든요. 그게 입 안에서 탁 터지면서 흙냄새가 나는데, 비 온 뒤 젖은 흙에서 올라오는 향기 같은 그런 냄새예요. 그게 소화제이기도 해서 밥에 비벼서 먹으면 밥이 금방 삭아버려요. 참 맛있는 젓갈이지요. 전어밤젓, 갈치속젓 같은 것들도 유명한 젓갈들인데, 다 현지에 가야 먹을 수 있어요. 요즘은 현지에 없는 경우도 많아서 섭섭해요.
 
(왼쪽부터) 토하젓, 전어밤젓, 갈치속젓 (출처: 전통향토음식 용어사전)
 

#추억의 음식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 중 하나가 생일케이크인데요. 어머니가 집에서 팬케이크를 구워 쌓고 거기다 초코과자를 꽂고 시럽을 뿌려 만들어 주셨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근사한데, 당시에는 친구들을 초대했는데 생크림 케이크가 아닌 팬케이크가 놓여 있는 게 그렇게 마음이 상하더라고요. ‘내가 생각했던 케이크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요.
 
(황) 우리 세대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유년 시절에 전쟁을 겪은 세대이니, 세끼를 먹으면 다행이었지요. 다만 생일 때가 되면 고깃국을 끓여 줬어요. 무가 들어간 맑은 고깃국, 그게 생일날 먹는 음식이었지요. 요즘의 미역국은 사실 산모가 먹는 거고요. 소고기 반근 정도 사다가 잘게 썰어서 국을 끓이면 온 식구가 먹을 수 있잖아요. 그것도 사실은 소고기무국을 끓여 먹을 수 있을 정도면 잘 사는 집이었지요.
 
반찬이 많아서 밥이 모자랐습니다.
 

#가족과의 식사

가족끼리 한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은 지가 언젠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모여도 대화 없이 밥만 먹기 일쑤인데요. 화목한 가족 식사시간을 회복할 방법이 없을까요?
 
(황) 핵가족이니 산업화 사회니 하는 말이 현실화 된지도 벌써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노동시간의 제도화는 선진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지만, 우리 사회는 다른 여러 가지 삶의 질을 따져보는 수치가 그렇듯이 노동시간은 최상위권 노동조건은 최하위권입니다. 출퇴근 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거나 연장 근로와 그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비정규직이 많고 고용과 해고가 소위 ‘유연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적어서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겠죠. 청년 학생의 경우에도 치열한 입시 과정을 거치고도 취직을 위한 스펙이나 경쟁력 있는 능력을 쌓기 위해 다른 여가를 가질 틈이 없습니다. 가족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일상을 공유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밥 먹고 잠자고 일하고 쉬는 시간대가 서로 다르기 마련이지요. 어느 정치인은 ‘저녁이 있는 삶’이란 캐치프레이즈로 신선한 문제제기를 해주었던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조건을 바꾸기 위해서는 성장 시대의 일방적인 욕망을 절제하거나, 아니면 개개인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야말로 소극적인 저항의 방식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생활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제도를 바꾸는 일이겠죠. 결국 정치사회적인 변화가 구체적으로 삶의 조건을 바꾸는 길이 되겠군요.
 

#청년, 그리고 행복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준비 중인 분들이 질문을 주셨어요. 준비 과정이 힘들다 보니 자신이 진짜 이 일을 좋아하는 지 의심이 되고 즐기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고요. 결국 그 일을 이루었을 때 과연 행복할까 걱정도 되고요.
 
좋은 이웃들의 진지한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해주시는 황석영 작가님
 
(황) 언제부터인가 행복에 대한 신화가 우리 사회 각 계층에 주요 화두로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외의 연구기관들은 종종 한 나라의 경제 문화 정치를 가늠하는 순위를 매기면서 한국의 행복 지수를 최하위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경제력 십위 권을 오르내리는 한국이 동남아나 남미의 어느 개발도상국보다 훨씬 행복 지수가 떨어진다는 것이죠. 누군가가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그야말로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매진하는 행위는 늘 거기 닿지 못했기 때문에 미진하고 절대로 충족이 되지 않는 태도입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의 행복이란 대부분 소비의 이데올로기로 교묘하게 변형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전세계적인 저성장의 시대에 중요한 가치는 ‘오늘’을 소중하게 살아가는 일이고, 너무 멀고 크게 목표를 설정하지 않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작은 일을 그날 그날 즐기면서 해내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과정 중에 남과 경쟁하지 말고 작은 써클 같은 공동체를 모색해 보는 겁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결혼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택하려 생각 중인 분의 질문인데요.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던지는 말에 어느 순간 패배자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아동 후원에 행복을 느끼는 삶에 만족하다가도, ‘너도 결혼해서 네 아이 길러야지’하는 말을 들으면 힘이 빠진다고요.
 
(황) 사실 기부나 후원은 아름다운 일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먼저는 자기 능력을 키워가는 것도 중요하지요. 능력의 한도 안에서 남을 돕는 것이 합리적이기도 하구요. 당신이 가장 중요하고 사랑받을 존재라는 것을 늘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을 키워 가면 타인을 사랑하는 힘도 그만큼 성장하게 될 테니까요.
 
질문이 채택된 분께 드리는 <황석영의 밥도둑>에 정성스레 싸인해 주셨습니다.
 
밥 한 그릇을 마저 해치우고, 숭늉까지 먹고 나니 뒤가 개운해졌습니다. 출간과 관련된 에피소드부터 최근 파리도서전에서 있었던 일들, 음식의 역사와 사회학적 의미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미난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니 시간이 금세 흘러버렸습니다. 저에겐 생각의 포만감마저 만족스러웠던 순간으로 기억될 이날의 겸상을 황석영 작가님은 어떤 기억으로 간직하게 될지 문득 궁금해졌는데요.

책 한 권, 밥 한 끼 그리고 나눔으로 이어진 소중한 만남. 좋은 이웃들도 <황석영의 밥도둑>을 통해 ‘나눠 먹는 맛’의 의미도 되찾고, 결식아동을 위한 나눔에도 동참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홍보팀 박은향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