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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내가 가진 것을 주지 말고 나를 줄 것

2006.08.17

 
                                                                   
  GNVol(굿네이버스 해외자원봉사단) 16기 이정연

9개월 전 해외자원봉사를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과연 내가 제대로 된 결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괜히 있지도 않은 어떤 것을 기대하면서 환상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갈지 방향성을 잡고 나 스스로를 좀 더 알기 위해선 이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후회가 되고 고생을 하게 되더라도 떠나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네팔은 계획과는 달리 급작스럽게 정하게 된 목적지였고, 네팔에 대해들은 것 이라고는 히말라야가 있다는 것 외에 딱히 주목할 만한 것도 없어 보이는 나라였습니다. 그 곳을 가겠다는 마음이 선뜻 생길만한 이유가 별로 생기지는 않았지만 네팔에 도착해서 보니 그것은 내가 네팔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에 했던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恨)이라고 정확히 이름을 붙일 순 없지만 네팔인들 에게도 우리와 유사한 정서가 있었습니다. 마오이스트들로 인한 고난, 가난으로 인한 고난, 그리고 강대국 인도로부터의 끊임없는 압박 등으로 마음에 참 많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굿네이버스 사업장에 있는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은 더욱 그런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 사업장의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아이들의 얼굴이 구분이 안됐고, 이름들은 또 왜 그리 비슷비슷한지 내가 과연 이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울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아이들과 친해지는 데 걸린 시간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짧았습니다. 보자마자 착 달라붙는 아이나 수줍어서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나 결국 아이들은 친해지니 하나같이 순수함이 묻어났습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문득 그새 얼마나 ‘어른’이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상 어른으로써 가져야 할 책임감은 자꾸 회피하려들고,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가 가지는 순수함이 또 남아있는가 볼 때 그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여름성경학교 등으로 단기간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것 외에는 거의 아이들과 장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팔에 올 때부터 아이들과 직접 부대끼면서하는 일보다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내게는 더 적합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어색함과 두려움이 생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금새 친해질 수 있었고, 결국 내게 있어서 네팔에 있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비로소 아이들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어린이집에 들어오게 된 배경과 함께 가족들의 어려운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버디켈 마을에 대해서 점점 더 알게 되면서 제대로 된 교육이 없이는 몇 십 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책임 있게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벌을 주면 술에 취한 부모들이 학교로 와서 항의한다는 것,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그 외에 부모로써 해야 할 아무런 책임을 하지 않는 부모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어린이 집에 있는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해야만 버디켈 마을에 변화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내가 네팔에서 무엇을 했는지 물어봅니다. 그때마다 사실 난감해 집니다.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하기엔 가르친 시간과 내용이 너무 적고, 노동을 하면서 뭔가를 만들어낸 것도 사실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말하라고 한다면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결국 내가 가서 한 일은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된 것입니다. 존재조차 관심 없었던 그 나라에 가서 네팔이 얼마나 귀한 곳인지 알게 되었고 소망 없이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이 숙명이라고 믿으며 수많은 우상을 섬기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귀하고 목마른 영혼들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에 먼저 다녀온 자원봉사자들이 했던 말들 중에 계속해서 기억이 나고 마음을 다잡게 했던 말들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주지 말고 나를 줄 것. 내가 가진 것을 주기는 쉽지만 나를 주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주저하지 말고 맘껏 사랑하라는 것.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그래서 되도록 더 많이 사랑하려고 했고 내가 가진 것을 자꾸 주고 싶을 때마다 내가 나를 주는 것인지 아닌지를 점검하게 됐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고 자꾸만 네팔이 생각납니다.

더 이상 내게는 따뜻한 샤워나 편안한 잠자리, 분위기 있는 카페가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는 다른 자원봉사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강한 햇빛 때문에 팔과 목이 꺼멓게 되어버리고 비가 오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길이 질퍽해서 순식간에 발이 진흙범벅이 되어버리고 비가 오지 않을 땐 앞이 안 보일정도로 많은 먼지를 마셔야 하고 수시로 공격(?)해오는 벼룩에 물려서 군데군데 거뭇거뭇한 자국이 있지만 그래도 그 곳에 너무나 다시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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