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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는 곳마다 고통을 만나다

2008.05.30


성도 시내에 도착하자 저녁 즈음 되었다.
주 피해 지역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들고 거리로 나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진이 다시 한번 온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거리위로 나온 것이었다. 주변에 잘 지어진 아파트와 형형 색의 텐트는 아주 미묘한 두려움을 자아내고 있었고, 중국의 붉은 국기와 성도의 푸른 두려움이 거리마다 섞여 있었다.
한국인들이 여행지로 좋아하던 성도.
하지만 이제 성도는 더 이상 화려하지 않았다.

북경을 거쳐 청두까지 날아오면서 지난 파키스탄 지진과 아프카니스탄에서의 구호활동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재해 지역에서 일한다는 것에는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지만, 그 내면에는 격정적인 무엇인가가 있다.
고통을 만난다는 것은 두렵지만 희망적이다.
중국은 지진으로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희망’으로 이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모든 대중매체에서는 희망을 노래하는 뉴스들이 방송되었다. 나 또한 이 무너진 사람들과 용기와 희망을 나누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저녁 늦게까지 이곳에서 살고 일하는 한국인들과 중국인, 조선족, 외국 단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호 활동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사람은 “이미 필요한 구호 물품을 중국 정부가 다 준비했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중국은 한국 단체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장담하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재해 지역이 이렇게 거대하다면 분명 어딘가에는, 도움이 없어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지난날의 경험들이 말하고 있었다 . 파키스탄도 아프가니스탄도, 쓰나미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이 고통을 스스로 이겨낼 힘이 없을 것이고 우리는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도에 도착한 첫날 잠이 들 때 까지도 이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모든 물자가 중국 정부로 모인다면 분배는 분명, 모두에게 돌아가기 보다는 정부의 주력 지원활동에 집중될 것임이 분명하다. 분배에서 소외된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주 피해 지역인 안현 지역 방문 준비를 하였다. 홍십자의 통행증을 받고 갖가지 장비들을 챙긴 후 출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홍십자에서 전염병 예방을 위해 외부 출입을 금지한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결국 우리는 안현 지역까지 들어갈 수 없어 계획을 변경했다.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한 시골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벼 모내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완전히 부서진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무너진 건물에서 기둥을 찾고, 살을 붙여 자체 텐트를 제작해서 살고 있었다. 난민촌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텐트와 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방문하자 주변으로 하나둘 모여들더니 신세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곳 마을 사람들은 이들의 생계인 농사를 계속해야 했기에, 난민촌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 무너진 집 틈 사이에 작은 천을 두르고 살고 있었다.

지진 발생 시간에 거의 모든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기에 사망자는 수명에 불과 했지만 거의 모든 살림살이들이 건물과 함께 무너져버렸다. 변변한 살림살이도 없이 거친 노동과 가난한 삶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부는 사망자가 적은 이곳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들에게는 1시간이상 떨어진 난민촌은 너무 멀었고, 모든 생계를 이 무너진 터전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동안을 씻지 못했을까?
전염병이 우려될 정도로 주민들은 물론 모든 물건들이 지저분했다.
사실, 어찌 이들이 청결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다. 중국 정부는 식량과 물을 우선적으로 배분하고 공동 소독을 하지만, 폐허를 뒤지고 그곳에 텐트를 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염병은 아무 대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소독용품, 비누 수건, 세제들의 아주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물품이 전혀 없었다. 이들의 무방비적인 텐트, 비참하도록 아무것도 없는 살림살이에 눈물이 났다.
수십가지의 지원품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고, 나는 즉시 수첩에 적어 내려갔다.
‘물, 쌀, 국수 등 식량...
수건, 비누, 세제, 소독용품, 칫솔, 치약, 휴지, 여성용품, 모기약‘

‘그리고 이들을 위로할 웃음’

약 5천명 1500가구의 가난한 농가들. 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진 지역을 조사하고 지역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청두 시내로 출발하였다. 홍십자를 다시 방문하고 성도 외교부까지 방문해야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피곤했지만 깊게 잠들지는 못했다.

지진으로 한순간에 가족과 집을 잃은 사람들은 무엇이 필요할까?
텐트, 살림살이 식량 그리고 또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다만 이것 뿐인 것일까.
몇 개월을 살면 텐트는 걸레처럼 변하고 몸은 질병에 쇠할지도 모른다.



가는 곳마다 고통을 만난다.
하지만 고통을 만난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하루빨리 이곳의 무너진 사람들이 희망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웃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_고성훈(굿네이버스 국제협력팀 팀장)

- 2005 파키스탄 지진 긴급구호
- 2006 굿네이버스 파키스탄 지부 사무국장
- 2007 ~ 2008 굿네이버스 아프가니스탄 지부장
- 현, 굿네이버스 국제협력본부 긴급구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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