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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더 나은 미래] [희망 허브] 가정에서 상처받은 아이들 학교에서 치유하고 갑니다

2015.02.11

공감, 인성교육의 시작입니다
<4>굿네이버스, 찾아가는 집단 치료… 말 걸면 째려보고 친구 괴롭히던 아이
프로그램 8개월 만에 밝게 변해 의사표현 없던 아이도 적극적으로 표현

 

'따라라~.'

학교 전체에 마지막 교시를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5분쯤 지나자, 등에 가방을 멘 아이들 세 명이 교육복지실 문을 열고 뛰어들어왔다. "선생님, 창수(가명·10)는 오늘 청소 당번이라 조금 늦을 거예요!"

얼마 후 청소를 마친 창수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오자, 작은 탁자에 네 명의 아이들이 쪼르르 둘러앉았다.

"자, 오늘은 각자 여기 봉투에서 카드를 뽑아서, 내용을 크게 읽어보자!"

"난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사람이야, 나는 못됐어."

"나는 왕따야."

제비 뽑기하듯 신이 나 쪽지를 뽑아들었지만, 글을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종이봉투를 뒤져 다른 쪽지를 뽑아보지만, 역시나 나를 비난하는 내용. 읽어 보니 기분이 어떤지를 묻는 말에 민후(가명·10)군이 벌떡 일어나 발을 쿵쿵 굴렀다. "선생님, 너무 기분 나쁘고 짜증 나요!"

"이렇게 나를 비난하는 이야기 들으면 화가 나잖아. 그런데 우리 잘 생각해보자. 우리가 스스로한테 이렇게 말한 적은 없을까? 엄마한테 혼나거나 친구들이 놀릴 때 '난 진짜 못났어, 멍청해' 하고 마음속으로 속삭인 적은 없을까?"

지난 17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육복지실. 매주 1회, 수업이 끝난 방과 후 시간에 아이들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찾아가는 집단치료' 프로그램 현장이다.

"오늘이 5회째 수업이었는데, 이번 세션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를 비난하는 말들을 인지하고, 이런 비난이나 콤플렉스를 극복해보는 내용이에요. 이 학교에서는 두 학년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 학년당 4명씩 참여해요. 참여하는 아이들은 각 학년에서 담임선생님들이 추천한 부적응 아동들이고요. 총 10회 프로그램의 전체 주제가 '자존감 향상'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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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주연(39)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서울동작 놀이치료사의 말이다. 이주연 놀이치료사는 "반에서 적응 못 하고 마음이 아픈 친구들 위주로 선별하고 나서 수업을 진행해보면, 한부모이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 부모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경우 등 결국은 가족이 취약한 사정이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찾아가는' 심리치료… 가까이서 아동 발굴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조사한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에 따르면, 경제 수준이 낮을수록 스트레스 인지, 우울감 및 자살 생각 등 정신적·심리적 영역에서 정서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심리치료가 가장 필요한 아이들이 치료를 받으러 상담기관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아픈 아이들을 찾아갈 순 없을까.'

굿네이버스에서 2012년부터 '찾아가는 집단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 기관과 학교로 들어가기 시작한 이유다. 굿네이버스 심리정서사업팀 이혜경 팀장은 "필요한 아동들에게, 낙인감 없이 아이들의 정서 문제를 개입하고자 학교로 들어가게 됐다"며 "문제 아동 치료뿐만 아니라 학급 아이들의 예방 또한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학교로 들어가는 것이 아동의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학교가 끝난 이후 따로 이동할 필요 없이, 방과 후 교실에 참여하듯 치료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기 때문. 이주연 놀이치료사는 "찾아가는 집단 상담치료가 지역사회 곳곳에 있으면 좋겠지만, 물리적 거리나 여건상 가장 필요한 아동들에게 문턱이 높은 게 사실"이라며 "학교에서 큰 낙인감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고, 고위험군으로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예방 차원에서의 개입이 가능한 게 큰 장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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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룹 활동으로 미리 예방한다실제 아이들의 변화도 컸다.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에 걸쳐 '찾아가는 집단치료' 프로그램이 이뤄진 창원 성주초등학교 김희정 담당교사는 "가정통신문을 보내 부모님들의 희망신청서와 활동동의서를 받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저학년과 고학년 두 집단의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며 "창원 내에서도 소외 계층이 많은 학군인데,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김 교사는 "이전에는 말만 걸어도 째려보고, 친구들을 많이 괴롭혀 교사들 사이에서도 관심 대상인 한 학생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부터 대답도 잘하고, 얼굴에 표정도 생겼다"며 "한 1학년 학생은 엄마랑 애착이 불안정해 학교에 와도 엄마만 찾고 울고 하다 보니 또래 관계 형성이 안 됐는데, 이제는 조금씩 바뀌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이주연 놀이치료사는 "아이들이 상징물을 이용해 가정 내의 스트레스나 불안, 아픔을 드러내고 있고, 교실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는 친구들도 소그룹으로 하다 보니 직접 손을 들고 대표로 글씨를 적어보겠다고 하는 등 열심히 참여한다"며 "큰 그룹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작게라도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인정받는, 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아간다면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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