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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더 나은 미래] 울퉁불퉁한 길 위, 희망의 발걸음 찍다

2015.10.27

울퉁불퉁한 길 위, 희망의 발걸음 찍다

 

굿네이버스 전문 자원봉사 사진작가 3인

김태환·박정인·채우룡 작가
수년간 열악한 아이들 상황 알리려 활동

삽 한자루로 8미터 우물 파는 모습
쓰레기 더미 속 방치된 아이들 등
미화·연출없이 '이야기' 담으려 노력

후원 이끌어냈단 소식이 제일 기뻐
세계 빈곤 최소화 위해 오늘도 '찰칵'

 

"사진에는 현실을 더 현실적으로 만드는 미묘함이 있다."

리얼리즘을 추구한 20세기 근대사진의 대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1864~1946)의 명언처럼 때로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전달력이 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현실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든 사진작가가 세 명 있다. 굿네이버스의 전문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김태환·박정인·채우룡(이상 '가나다' 순)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왜 이 일을 하는 걸까. 지난 17일 굿네이버스 본부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 “전문 자원봉사자끼리 만난 건 처음이에요. 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사진을 찍는지 들을 수 있어서 저희에게도 좋은 자리가 된 것 같아요.”
지난17일 굿네이버스 본부를 찾은 김태환·박정인·채우룡 사진작가(사진 왼쪽부터).
 
◇까맣게 탄 신발, 청년 구슬땀… 스토리 담는 김태환 사진작가

"어떤 사진을 찍을 때 제일 행복하세요?"

기자의 질문에 김태환 사진작가는 "예쁜 것을 찍을 때"라는 답을 내놨다. 무슨 말인지 의아할 법하지만, 지난 2013년 그가 잠비아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숯을 움켜쥔 손, 뜨거운 구덩이 위로 물을 부을 때 피어오르는 수증기의 모습은 사진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잠비아에서 숯을 굽는 소년과 하루를 함께 보냈어요. 불붙은 나무를 땅속에 묻으면 가까이 가기도 어려울 만큼 강한 열기가 피어올랐죠. 하지만 힘들어 미칠 것 같은 사진은 찍고 싶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신발, 손 같은 게 아이의 삶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 잠비아의 숯 굽는 청년_김태환(2013) / 굿네이버스 제공
 
지난 3년간 굿네이버스와 함께 해외 현장을 누비며 찍었던 사진 중 가장 사랑하는 한 컷은 올해 탄자니아의 식수 위생 지원사업에서 찍은 사진이다. 삽 한 자루로 7~8m 깊이 우물을 파내려가는 마을 청년의 모습을 본 순간 김 작가는 셔터를 눌렀다.

"청년이 파던 우물 구덩이에 한번 들어가 봤는데 숨 쉬기도 어려울 만큼 답답했어요. 하루에도 몇 시간씩 그 속에서 우물을 파고 있는 거예요. 훌륭한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죠. 물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탄자니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다면 그렇게 좋은 사진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패션 화보와 드라마·영화 포스터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그의 스튜디오는 늘 바쁘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는 "굿네이버스에서 먼저 연락을 주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 생겨도 무조건 간다"며 미소 지었다.

"어떤 현장을 가장 찍고 싶냐고 물으면 '전부 다'라고 대답할게요. 그 정도 열정은 있어야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최고의 작품은 사람을 움직이는 한 컷"… 박정인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사진가로도 활동 중인 박정인 작가는 벌써 10년째 굿네이버스의 전문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기회만 된다면 사진과 그림이라는 저의 달란트(재능)를 기부하고 싶었는데, 제 그림을 본 굿네이버스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죠. 감사한 마음으로 합류했습니다. 올해가 10년째인 줄 몰랐어요. 의무감으로 했다면 이렇게 오래는 못 했을 거예요."

"소극적인 성격 탓에 누군가 먼저 봉사의 기회를 주길 기다렸다"던 그는 2010년 친구인 홍원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굿네이버스를 소개했다. 봉사하며 누리는 행복을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수아(가명)와 동생들_박정인(2015) / 굿네이버스 제공
 
"촬영을 나갈 때마다 아이들에게서 행복과 감사의 의미를 새롭게 배운다"는 박 작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 지난달 전라도에서 만난 은아(가명·13) 남매의 뒷모습을 골랐다. 은아를 앞질러 달려가는 동생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볍고, 전봇대와 논두렁은 햇살을 받아 따뜻한 기운을 뿜는다. 박 작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씩씩함을 잃지 않는 은아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내 아이들의 경우 보호 차원에서 얼굴을 찍지 않을 때가 많아요. 사진 앵글에도 제약이 많죠. 하지만 그 안에도 철칙은 있습니다. 바로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아이의 의지'를 담는 거죠. 은아가 지금 서있는 길은 조금 울퉁불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해 가다보면 반드시 목적지로 이어질거라 믿습니다. 후원자 분들이 저의 사진을 통해 은아의 밝은 앞날을 봐주길 바랐죠."

그의 사진은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가을 그가 촬영한 손진영(가명·9)군이 지역사회와 기업의 후원으로 새 보금자리를 얻게 된 것. 문도 잘 열리지 않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던 손군은 아늑한 공간에서 꿈을 키워갈 수 있게 됐다.

"제 사진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4시간 동안 2000장이 넘는 B컷을 찍고, 하룻밤을 꼬박 새워 땅끝마을에 다녀온 뒤에도 '아이가 후원을 잘 받아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날아갈 듯 기뻐요."

◇말라위 소녀가 알려준 관찰자의 시선… 채우룡 사진작가

"2010년, 정기락 사진작가가 굿네이버스의 필리핀 사업 현장을 찍은 사진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됐어요. 한 장 한 장이 정말 순수하고 따뜻하더군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전문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정기락 작가를 졸라 소개를 부탁했습니다. 이후 포트폴리오를 갖고 직접 굿네이버스를 찾아갔죠. 그게 벌써 4년 전이네요."
 
▲ 케냐 쓰레기 마을의 모습_채우룡(2015) / 굿네이버스 제공
 
2011년, 채우룡 작가가 굿네이버스의 전문 자원봉사자로서 처음 찾은 곳은 아프리카 말라위였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말라위의 여자아이들에게 성교육, 직업교육 등을 진행하는 여학생 인식 개선 운동 '굿시스터즈' 현장에서 그는 운명처럼 한 아이를 만났다.

"출국하기 전 함부로 아이를 후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차가운 아프리카 소녀' 한 명이 그 결심을 무너뜨렸죠(웃음). 저에게 유독 새침하고, 잘 울고, 늘 약을 먹어야 하는 그 애가 건강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후원을 결정했습니다."

후원 아동을 만난 후 그의 사진에도 변화가 생겼다. 상업사진을 찍으며 연출된 이미지에 익숙했던 그는 이제 관찰자로서 현장을 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워요. 제가 너무 현장 안으로 들어가서 뭔가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은 건 아닌지 후회가 됐죠. 말라위 방문 이후에는 스스로 뭔가 하려 하지 않고 카메라가 마치 그곳에 없는 것처럼 그 나라와 그곳 사람들의 분위기를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지난해 채 작가가 촬영한 케냐 쓰레기마을 사진에는 그 어떤 미화나 연출도 없다. 그럼에도 이 사진들은 케냐의 아동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채 작가는 "가난이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빈곤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가운데 내 사진에도 주어진 역할이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때론 사진 한 장이 100분짜리 영화보다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굿네이버스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작가들이 그런 사진을 많이 찍어서 세계의 가난을 없애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권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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