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닮은 꼴 평양, 그리고 그 곳의 사람들
우리와 닮은 꼴 평양, 그리고 그 곳의 사람들
2006.07.11우리와 닮은 꼴 평양, 그리고 그 곳의 사람들
2006.07.11우리와 닮은 꼴 평양, 그리고 그 곳의 사람들
- 남북 청소년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며 -
굿네이버스 통일교육연구위원 / 석관고등학교 교사
정순미
2000년 금강호를 타고 금강산에 갈 때의 마음이 이렇게 설렜을까요? 2005년 개성이 개방될 것이라고 미리 김치국부터 마시고 통일에 관심 있는 선생님들끼리 여행 경비를 모으기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 이렇게 설렜을까요? “아! 정말 동족의 절반인 북녘 동포들이 사는 평양을 방문하게 되는 구나” 하는 기대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돌이켜 보니 학교에서 아이들과 북한 사회와 통일을 함께 이야기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습니다. 북한 사회를 직접 가보지 못하고, 제한된 자료를 통해 알게 된 정보만을 가지고 아이들과 북한의 청소년, 북한의 청소년 문화, 북한 청소년의 학교생활 등을 얘기할라치면 정말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습니다. 예컨대 저의 북한 사회관련 수업은 이런 식의 수업이 되곤했습니다.
“선생님! 북한의 학교에서도 급식을 하나요?”
“음, 북한에서는 각자 점심시간에 집으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고 온다고 합니다.”
“진짜요? 와~ 시간 많이 걸리겠다.”
“도시락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가끔 있다고 합니다.”
(흐음, 북한 학교의 점심시간 풍경은 정말 어떨까? 이렇게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들과 북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을까?)
저는 이런 반쪽짜리 불완전한 수업을 보완하기 위해서 몇 해 전부터는 북한의 생활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을 찾아 학생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왔습니다. 강연회가 있을 때마다 저는 강연회에 오시는 분들께 그동안 궁금했던 북한 사회의 현실에 대해 속사포처럼 질문을 해대곤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사회 현실에 대한 궁금증은 언제나 ‘백번 물어본 것이 한 번 본 것만 못하다(百聞不如一見)’라는 아쉬움과 갈증을 낳았습니다.
최근 들어 평양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드물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도 평양행의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굿네이버스가 청소년 통일교육에 관심을 갖고 통일교육 자료를 함께 제작하자는 제안을 했을 때, 저는 “아 이번에도 남들이 제공한 북한 관련 자료를 가지고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가공해야 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굿네이버스가 이렇게 실질적으로 열의를 갖고 교재 개발 교사 2명에게 방북의 기회를 제공해 주심에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는 6월 21일 아침 김포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고려항공 트랩을 오르는 순간부터 6월 24시 저녁 다시 김포공항에서 고려항공 트랩을 내려오는 순간까지 3박 4일의 일정동안 다른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평양을 그리고 북한을 체험한다는 생각으로 거리의 풍경 하나, 사람들의 표정 하나,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혹은 매대(일종의 허가받은 노점상)의 판매원들과의 대화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억 속에 혹은 사진 속에 담아 두려 애썼습니다.
고려항공 승무원, 고려항공 기내의 ‘박띠를 매시오’라는 색다른 안내 문구(박띠는 안전벨트를 의미함), 기내에서 제공되는 노동신문과 잡지, 음료 등을 사진기에 담느라 평양 순안 공항까지의 1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비행기는 벌써 순안공항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순안공항의 첫 인상은 건물 옥상에 설치된 초상화와 건물 외벽의 커다란 벽화만 아니라면 소규모의 한적한 지방 공항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남남북녀(南男北女)라고 했나요? 입국수속을 마친 일행이 정해진 차량에 탑승해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눈에 띠는 미모와 세련된 옷을 입은 여자 분이 차량 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 여자 분은 남측에서 온 150여 명의 방북단을 안내하는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직원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남측 사람들이 다들 미혼인줄 알만큼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으며, 3박 4일 일정 중 장거리 이동 중에는 북한의 가요를 직접 한 소절 한 소절 부르며 가르쳐줘 우리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호텔 직원, 민족화해협의회 직원, 지정된 관광 명소의 안내 직원, 매대 판매 직원 등과만 직접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외모가 빼어나고 교양이 있어 선발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평양은 세계 8대 계획 도시 중의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잘 계획되어 도로도 시원하게 뚫려있고, 도로변도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도로변에 한 줄이 아니라 서너 줄로 서 있는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의 풀밭은 평양시민들의 좋은 휴식처였습니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에 보이는 서너 대의 전차와 드문 드문 다니는 자동차는 평양의 공기가 얼마나 맑은 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서울 한강과 닮은 꼴인 평양 대동강, 여의도와 닮은 꼴인 양각도 등은 평양을 더욱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평양은 세계의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 또한 지니고 있었습니다. 평양은 한 마디로 ‘회색과 붉은 구호의 도시’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빌딩과 아파트 등 건물은 큼직큼직 하지만 페인트나 외장 색깔이 없으며, 모든 건물마다 옥상이나 입구에는 붉고 커다란 글씨로 구호가 어김없이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회색 건물과 붉은 구호, 그리고 차창 밖으로 본 대체로 남루한 옷차림의 평양 시민들의 모습은 왠지 모를 어색한 조화를 이루며 평양만의 독특한 색깔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둘째 날 사료공장 준공식 참석과 남포육아원, 정성제약연구소 등의 사업장을 방문하고 드디어 평양 시내에서도 시설이 좋아 남측 사람들에게 단골로 개방되는 유명한 ‘모란봉 제1중학교’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교과서와 학용품은?' '교실과 복도는?' '학생들의 머리 모양은?' '여학생들은 어떤 머리핀을 하고 있을까?' 등 이 모든 궁금증을 풀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로 남한의 학생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아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통일교육 학습 동기 유발을 위해 모란봉 제1중학교 학생들의 머리 모양, 머리 핀, 신발, 가방 등에 초점을 두고 학생들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이나 교구 등을 찍는 데 비해, 저는 디지털 카메라 렌즈를 아래에 맞추고 학생들의 신발을 찍다 보니 북측 교원과 민족화해협의회 직원들이 ‘뭘 찍는데 아래를 찍느냐?’고 물어와 난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북측 사람들은 남측 사람들이 자신들의 깨끗하고 좋은 면만 찍어가길 바랬기 때문에 사진 찍는데 눈치를 좀 보았다고나 할까요? 실제로 우리가 달고 다니는 커다란 명찰의 이름을 보고, 한 교원이 “순미 동무, 그쪽은 찍지 말아주시오.”하는 제재를 받아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서 학생들에게 북한 청소년들의 머리 모양이나 머리 핀, 신발, 가방 등을 사진을 보여주어 더욱 친숙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 할 수 있다는 뿌듯함에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평양에서의 3박 4일은 뭐니 뭐니 해도 직항으로 1시간 밖에 걸리지 않으며, 시차가 없고, 음식 불편이 없고, 말이 통한다는 면에서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우리가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로 남북한 만큼 말이 잘 통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일 없습니다.”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남한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남과 북은 언어에 있어서도 다양한 만남을 통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남북한의 청소년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우리단체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통일교육(On-Off line 사회통합교육)을 연구개발 중에 있으며, 9월 이후 통일세대를 준비하기 위한 청소년통일교육을 중, 고등학교에서 실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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