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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어는 다르지만 우리는 친구

2016.03.18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 수상자들의 봉사 현장 가보니

 

 

"둥글게 둥글게~ 랄라랄라 즐겁게 춤추자!"

캄보디아 학교에 낯익은 한국 동요가 울려 퍼졌다.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뛰어노는 아이들은 한국과 캄보디아 초등학생들. 40도가 웃도는 날씨, 햇볕을 가려줄 천막 하나 없는 모래 자갈밭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흙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그래도 연신 "꺄르륵" 웃고 신이 났다.

"말이 안 통하면 어때요. 눈빛만 봐도 딱 알겠는걸요." 땡볕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김보영(11·대전 가장초4)양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캄보디아 소녀 찬로우(11)양은 "원래 알던 친구 같다"고 맞장구치며 따라 웃었다.  

 

며칠 새 단짝이 된 (왼쪽)보영(11)이와 찬로우(11)

 

초등학생 11명과 학부모들로 이뤄진 '희망봉사단'이 지난달 15일부터 3박 5일간 캄보디아를 찾았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개최된 '제7회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 수상자들. 빈곤국 아동의 삶이 담긴 영상을 본 후 온·오프라인으로 응모된 응원편지 228만통 중 3차례 심사를 거쳐 우수작으로 뽑힌 주인공들이다. 1년 후, 이들은 드디어 직접 해외 자원봉사를 하러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6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캄보디아. 다시 버스로 2시간을 더 달려 향한 곳은 캄보디아 최북동쪽 외딴 마을 '꼽(Kob)'의 '소리야 트메이 초등학교'. 학교는 전교생 160여 명 중 90%가 굿네이버스의 한국 후원자들 덕분에 학교를 다닐 만큼 상황이 열악하다.

 

부모-자녀 함께 기획·실행한 해외봉사…'인생의 전환점'

냉방 시설조차 없는 10평 남짓한 교실에서 학부모들은 일일교사가 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4시간 넘게 수업을 이어갔다. 찰흙 형태의 천연 비누 소재로 비누를 만들며 위생의 중요성을 알렸다. 색종이로 왕관을 접어 친구끼리 씌워주는 등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놀면서 배울 수 있는 활동이 이어졌다. 김한진(10·충남 탕정초3)군을 따라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온 아버지 김진성(40·충남 아산시)씨는 "아내가 해외봉사활동을 열심히 다니는데, 가기 전 준비도 많이 하고 떨린다고 했던 마음을 이번에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유치원 교사인 아내에게 색종이 접기 노하우를 배워, 그림으로 된 설명판을 직접 제작해왔다.

굿네이버스의 '희망편지쓰기대회'가 시작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00여명의 수상자가 해외 봉사활동을 펼쳤지만, 올해는 더 특별하다. 올해부터 해외봉사 활동 기획 단계부터 모두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김영배 굿네이버스 캠페인사업팀장은 "기획 단계부터 학생과 학부모들이 참여해 아이디어를 냈고, 굿네이버스 직원들과 한 달 넘게 준비했다"며 "아이들에게 부모의 영향이 가장 큰 만큼, 가족이 함께 나눔 활동에 참여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진심 어린 노력 덕분일까. 캄보디아 아이들도 똘망똘망한 눈으로 설명에 집중하더니 금방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서희(12·서울 용동초5)양은 짝꿍인 섬낫(9)군이 어려워할 때마다 차근히 만들기와 접기 등 시범을 보이며 누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섬낫군은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이 만든 공룡 모양 비누를 선물로 건넸고, 색종이로 만든 왕관을 씌워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누피셋(너는 소중한 존재야).

 

 

이내 서희양도 섬낫을 따라 하자, 둘은 빙그레 웃었다. 서희양은 "해외봉사라고 해서 도와주는 것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캄보디아 친구들이 배려와 나눔을 가르쳐줬다"며 "해외 후원 아동이라고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라, 단지 멀리 사는 친구일 뿐인 걸 직접 만나니 확실히 알았다"고 했다.

학부모들도 느낀 것이 많다. 김서진(12·충남 남성초5)양의 어머니인 주부 허정(43·충북 청주시)씨는 이번 해외봉사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아이들이 '한 번 왔다 가는 사람들'이라고 되레 상처 받을까봐 처음엔 다가가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캄보디아 아이들이 먼저 눈을 마주쳐줬는데, 순간 몸에 찌릿한 전율이 흐르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첫날,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그려주며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지 가정 눈으로 보니, 아동 후원 '선택' 아닌 '의무' 깨달아

 

마지막 날, 봉사단은 현지 가정 5곳을 직접 방문했다. 학교에서 차로 30분쯤 떨어진 피숑(10)양의 집은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있었다. 땅에서 2미터 높이 위에 지어진 집은 사다리부터 흔들거렸고, 방바닥은 긴 나무판자를 엉성하게 이어놓아 틈새로 바닥이 보였다. 이곳에서 피숑양은 조부모와 언니, 어린 남동생과 살고 있었다. 집을 나간 아버지, 돈을 벌기 위해 국경을 넘은 어머니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는 할아버지는 전쟁통에 한쪽 다리를 잃은 후 목발에 의지해야 겨우 몇 걸음 이동할 수 있었다. 피숑 가족의 마지막 희망이 돼준 건 2012년부터 이어진 굿네이버스의 후원. 피숑양은 "가장 큰 변화는 우리 세 남매가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라며 "커서 선생님 돼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5남매의 아버지인 이상욱(42·서울시 노원구)씨는 자녀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마다 해외 아동 한 명씩을 후원하자고 아내와 세운 목표를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씨는 "후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고승연(10·화성시 구봉초3)양은 피숑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몇 번이나 악수하고 포옹을 하고서도, 돌아가는 길에 연신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한국에서 온 가족들 덕분에‘소리야 트메이 초등학교’는 매일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날 밤, 이준서(9·강원도 맹방초2)군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종이 한 장 가득 앞으로의 다짐과 소망들을 채웠다. "나중에 훌륭한 목수가 돼 캄보디아 친구들 가족에게 튼튼한 집과 푹신한 침대를 만들어줄 거예요. 피숑 누나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꼭 이뤄달라고 기도도 할 거예요."

최주형(12·석계초 5)양은 "여행으로 캄보디아를 왔다면 혼자만의 추억으로 끝났겠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만드니까 두 배 더 좋다"며 "캄보디아 친구들이 조금 더 행복해지도록 돕는 봉사 전문가라는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성범 굿네이버스 캄보디아지부장은 "한국에 돌아가 각자의 자리에서 이번에 배우고 느낀 것들을 잊지 말고 계속해 이어가 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이 만든 색종이 왕관을 직접 씌워주며 서로를 응원하는 아이들.

'제8회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

개최 올해 8회째를 맞는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가 3월 2일부터 5월 30일까지 3개월간 진행된다. 이번 희망편지쓰기대회 주인공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카펫 공장을 다니는 12세 네팔 소녀 '수니타'. 특히 이번 대회는 수상 인원을 늘려 총 20명을 선발, 우수작에 선정된 학생들은 오는 여름 수니타를 만나러 네팔로 자원봉사활동을 떠난다. 학교를 통해 단체 참여 혹은 굿네이버스 홈페이지(hope.gni.kr)로 응모할 수 있다.

| 참여 문의: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 운영본부(02-6717-4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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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애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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