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두 해 전인가,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며칠 묵으실 기회가 있었다. 내가 평소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하는 지를 한동안 유심히 보시더니 내게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난다. “넌 왜 애들에게 항상 무섭게, 야단치듯 이야기하니? 좀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 줘.”
일과 가사를 병행하면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었고, 또 쌍둥이를 키우다 보니 모든 것을 두 번씩 말해야 했다. 그렇기에 시간을 벌려면 뭐든지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둘을 앉혀 놓고 규율을 얘기할 땐 큰 소리로, 약간은 무섭게, 지시하듯 명령하듯 말하는 게 어느새 버릇이 된 것이다.
임신했을 땐 ‘나의 잘못된 엄마 노릇이 두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 육아 서적을 참으로 많이 읽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정한 엄마의 상(想)은 ‘자상하고도 단호한 엄마’였다. 기본적으로는 자상하고 친절하며 다정하게 아이들을 대하지만, 살면서 지켜야 하는 지침과 규칙을 가르칠 때는 단호하게 알려주는 엄마가 될 것이라 다짐한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자상한 엄마는 권위적인 엄마로, 단호한 엄마는 그저 무서운 엄마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 부모들이 육아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권위 있는(authoritative)’ 부모가 될 거라면서 ‘권위주의적인(authoritarian)’ 행동을 하고, ‘엄격하고 단호함’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강압적이고 지시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적(authoritarian) 부모는 순응과 복종에 높은 가치를 두고, 엄격하고 타이트한 규칙을 정해놓고 그것에 따르게 하기 위해 높은 통제를 가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무섭거나 강압적이면서 지시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반면 권위 있는(authoritative) 부모는 자녀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 일관된 제한, 제재보다는 자연스런 결과(만약 아이가 뜨거운 스토브를 만진다면 불에 덴다는 것)를 알려주며, 아이의 이야기를 아이의 관점에서 잘 들어준다. 또 규칙을 정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며 때론 그 규칙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권위주의적인 부모는 잠자는 시간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휴가기간 동안에도 순종하여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요구하지만, 권위 있는 부모는 자녀와 논의해서 휴가 동안에는 늦게 잠들 수 있도록 한다.
권위주의적 가정에서 자란 아동일수록 불안해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자존감과 분노 표출의 문제로 고통 받는 경향이 높다(Maccoby & Martin, 1983). 반면 권위 있는 부모에게서 자란 아동일수록 높은 자존감과 사회적 기술을 지니며 타인과도 잘 협응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주 목격되는 아동학대나 ‘묻지마 살인’ 등의 문제는 곧 분노의 조절과 표출에 관한 문제이다. 규율을 지키게 한다는 목적으로 소리치고 화내며 강압적으로 지시할 때 아이는 규율이 아닌 분노를 배우며, 다양한 감정을 오직 화를 내는 것으로만 표출하게 된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통해 분노하는 법을 배우고 다양한 감정을 오직 화를 내는 것으로만 표출하게 된다. 우리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 원하는가를 생각한다면 먼저 나는 어떤 부모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화가 난다며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고 혼쭐을 내면서 ‘그런 행동은 어디서 배웠어?’라고 했더니, ‘엄마’라고 한 마디를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난 어떤 부모였나’를 깊이 생각하게 됐고, 소리치거나 화내지 않고 양육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자상하고(Warm & Kind) 단호한(Firm) 엄마에서 더 나아가 ‘침착하고 차분한(Calm)’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고, 침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워야 함을 새삼 되새긴다.
일과 가사를 병행하면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었고, 또 쌍둥이를 키우다 보니 모든 것을 두 번씩 말해야 했다. 그렇기에 시간을 벌려면 뭐든지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둘을 앉혀 놓고 규율을 얘기할 땐 큰 소리로, 약간은 무섭게, 지시하듯 명령하듯 말하는 게 어느새 버릇이 된 것이다.
임신했을 땐 ‘나의 잘못된 엄마 노릇이 두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 육아 서적을 참으로 많이 읽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정한 엄마의 상(想)은 ‘자상하고도 단호한 엄마’였다. 기본적으로는 자상하고 친절하며 다정하게 아이들을 대하지만, 살면서 지켜야 하는 지침과 규칙을 가르칠 때는 단호하게 알려주는 엄마가 될 것이라 다짐한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자상한 엄마는 권위적인 엄마로, 단호한 엄마는 그저 무서운 엄마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 부모들이 육아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권위 있는(authoritative)’ 부모가 될 거라면서 ‘권위주의적인(authoritarian)’ 행동을 하고, ‘엄격하고 단호함’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강압적이고 지시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적(authoritarian) 부모는 순응과 복종에 높은 가치를 두고, 엄격하고 타이트한 규칙을 정해놓고 그것에 따르게 하기 위해 높은 통제를 가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무섭거나 강압적이면서 지시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반면 권위 있는(authoritative) 부모는 자녀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 일관된 제한, 제재보다는 자연스런 결과(만약 아이가 뜨거운 스토브를 만진다면 불에 덴다는 것)를 알려주며, 아이의 이야기를 아이의 관점에서 잘 들어준다. 또 규칙을 정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며 때론 그 규칙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권위주의적인 부모는 잠자는 시간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휴가기간 동안에도 순종하여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요구하지만, 권위 있는 부모는 자녀와 논의해서 휴가 동안에는 늦게 잠들 수 있도록 한다.
권위주의적 가정에서 자란 아동일수록 불안해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자존감과 분노 표출의 문제로 고통 받는 경향이 높다(Maccoby & Martin, 1983). 반면 권위 있는 부모에게서 자란 아동일수록 높은 자존감과 사회적 기술을 지니며 타인과도 잘 협응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주 목격되는 아동학대나 ‘묻지마 살인’ 등의 문제는 곧 분노의 조절과 표출에 관한 문제이다. 규율을 지키게 한다는 목적으로 소리치고 화내며 강압적으로 지시할 때 아이는 규율이 아닌 분노를 배우며, 다양한 감정을 오직 화를 내는 것으로만 표출하게 된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통해 분노하는 법을 배우고 다양한 감정을 오직 화를 내는 것으로만 표출하게 된다. 우리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 원하는가를 생각한다면 먼저 나는 어떤 부모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화가 난다며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고 혼쭐을 내면서 ‘그런 행동은 어디서 배웠어?’라고 했더니, ‘엄마’라고 한 마디를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난 어떤 부모였나’를 깊이 생각하게 됐고, 소리치거나 화내지 않고 양육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자상하고(Warm & Kind) 단호한(Firm) 엄마에서 더 나아가 ‘침착하고 차분한(Calm)’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고, 침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워야 함을 새삼 되새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