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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안전과 성장 사이의 딜레마

2016.12.26
 
태어난 지 2주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예방주사를 맞히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그 때 나는 이 작고 약해보이는 생명체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고, 성인까지 건강하게 키우는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모든 부모에게 아이들의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한 1순위일 것이다. 한 입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서 숟가락을 들고 아이를 따라다니고 유기농이나 친환경 식품 코너를 기웃거리며 조금이라도 건강한 음식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건강은 인간 권리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에 관련된 것으로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건강은 아이들의 웰빙과 행복에도 직결되는 것이라, 부모는 자녀의 건강과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할 정도로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은 오히려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지난 해 한국 유치원 교사들과 핀란드 유치원을 방문했었다. 핀란드 유치원에서 눈에 띄었던 점 중 하나는 아이들의 바깥놀이 시간이었다. 평소 북유럽의 바깥놀이 문화에 대해 익히 들어왔지만, 실제로 본 바깥놀이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매일 야외에서 자유롭게 놀이하는 시간을 가졌고, 내가 보기에는 아이가 위험해 보이는 순간에도 교사들은 보고만 있었다. 한국에서 함께 간 유치원 교사들은 하나같이 ‘한국이었다면 이렇게 아이를 놀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핀란드 유치원 교사에게 ‘아이들이 바깥놀이를 할 때 부모가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 걱정하지 않느냐?’라고 질문하자 그 교사는 처음에 내 질문의 의도를 알아듣지도 못했다. 교사는 부모들은 아이가 어릴 때 다치는 것보다 중학생 정도 성장했을 때 다치는 것을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부모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하지만 부모가 유아교육, 보육 서비스를 구입하는 소비자라는 이유로 부모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교사들은 대부분 바깥놀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상처라도 나면 부모가 싫어할 것이니 바깥놀이를 가능한 줄이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놀이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핀란드 유치원 교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부모가 중요한 수요자라면, 부모들에게 돈을 주고 사야하는 중요한 서비스 중 하나가 바깥놀이라고 이야기하면 어때요?”

물론 아이들에게 위험한 놀이 환경을 제공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놀이운동가로 알려진 편해문 씨는 아이들이 건강한 위험을 경험할 수 있는 놀이 환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위험요소를 원천봉쇄하면 아이들은 어떤 것이 위험한지, 위험한 상황에서는 자신을 어떻게 통제해야하는지 등에 대해 배울 기회를 잃는 것이다. 덧붙여, 건강은 신체적 건강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 안전만을 생각하는 프레임에 놀이가 갇혀버린다면 유아의 정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이의 안전할 권리와 성장할 권리가 상충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무조건 안전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부모 개인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사회정치적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아이들의 놀이 공간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모래 놀이를 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지만, 먼저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깨끗한 모래를 제공받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가능한 것이다. 아이의 안전과 성장 사이에 명확한 해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스스로 경험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장혜진 (대구대학교 유아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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