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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어느 안경점의 ‘돋보이는’ 날

2008.02.22





지난 1월 말, 노원좋은이웃지역아동센터에 자신을 안경점 대표라고 밝힌 한 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의 요지는 좋은이웃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에게 안경을 하나씩 선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은 멀리 있는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아 눈을 찡그리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성장기라 정기적인 시력검사와 함께 각자의 시력에 맞는 안경이 필요한데도, 형편상 잘 마련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감사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칠판 글씨가 잘 안보여서 친구 노트를 봐가며 필기한지 꽤 오래됐다는 혜정이, 지금 착용하고 있는 안경 도수가 잘 맞지 않는 지호. 선생님은 생각지도 못했던 고마운 손길에 감사해하며 흰 종이에 안경선물을 받을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 둘씩 채워 넣었다.

드디어 2월 1일!
노원구에 있는 안경점인안경박사로 향했다.




<이웃과 함께 하는 날>이라고 내걸린 현수막,
그 아래에 적혀있는 노란색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매월 첫째 날 고객님을 모시지 못 해 죄송합니다.>

‘무슨 말이지?’

어리둥절해하는 우리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안내문구가 하나 더 있었다.




‘오늘은 이웃과 함께 하는 날입니다. 일반 판매는 하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이 안경점은 매달 한 번씩 지역 이웃들에게 안경을 선물해주기 위해,
 매월 첫째 날인 1일은 일반고객들에게 안경 판매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는 손님들을 돌려보내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
날짜까지 잡아놓고서 정기적으로 나눔을 실천해 왔다니!
안경점 입구에서부터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물씬 느껴졌다.




아이들의 시력검사가 하나 둘씩 시작되었다.

“이것도 안 보인단 말이지? 흠... 그럼 그 다음 숫자 읽어 보세요”

“그 다음 꺼는... 3이요! 아니다, 8인가? 힝... 잘 안보여요.”

 



“뭐야~ 선영이 누나! 그것도 안 보이는 거야? 누나도 안경 새로 해야겠네!”

생각보다 아이들 시력이 많이 나빴다.
걱정스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새 안경을 맞춘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보였다.




시력 측정이 끝나고, 주문카드에 시력과 함께 특이사항들이 쏙쏙~ 기록되었다.
자~ 이제 다들 안경테 고를 시간!




“아저씨! 이게 예뻐요~ 아님 이게 예뻐요?
갈색 뿔테는 너무 날카로워 보이는 것 같지 않아요?”

아이들 개성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안경테 종류도 다양했다.
여기저기서 불러가며 한 번 봐달라는 아이들의 요청에
안경사 아저씨들은 눈코뜰새 없이 바빠졌다.




‘아악~ 나는 도저히 못 고르겠어!!’

‘미(美)’를 위해 안경은 절대 안 쓰겠다던 선영이.
아까부터 똑같아 보이는 비슷한 안경테 두 개를 앞에 놓고 고민에 빠졌다.




엄격한 심사 끝에 선택된 안경테들이 하나 둘 씩 줄지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안경테에 맞게 알을 깎아 내고,
아이들 눈에 꼭 맞도록 안경알 도수를 체크하시는 이사님의 손길을 거쳐!




짜자잔! 드디어 아이들 눈에 꼭 맞는 새 안경이 탄생했다!
삐뚤어진데는 없는지, 귀걸이 부분은 편한지,
 아이들의 작은 느낌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겨주시는 손길을 보며,
그 세심한 마음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안경이 하나 둘 씩 주인을 찾아, 우리 아이들 손에 꼬옥~ 쥐어지기 시작했다.

“맘에 드니? 혹시 불편한거 있으면 학교 마치고 오면서 들리렴.
 아저씨가 요리조리 손 봐줄게”

“네! 근데요~ 아저씨 말대로 검정색 뿔테로 하길 잘한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잘 쓸게요~”

새 안경을 손에 들고 룰루랄라~
안경점을 나서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사뿐사뿐하다.




작년 1월부터 나눔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안경박사 하계점의 연홍렬 대표님은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밝은 세상을 보여주고,
안경사들에게는 소명감을 심어주고 싶어 이웃과 함께하는 날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무료로 나누어 주는 안경에다, 하루 영업을 포기하고
일반 판매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다.

“눈앞의 것만 생각하면 삶의 의미도 모른 채 그냥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누는 것에 대해서도 핑계거리만 늘어나기가 쉽지요.
매달 첫째날 이 행사를 진행하면서
 저희가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삶의 활력을 얻고 있어요”

말이 봉사이지, 매번마다 더 큰 기쁨과 감명을 얻는다며 활짝 웃으시는
대표님의 얼굴에서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자 하는 따뜻함이 배어나왔다.
혹시나 다른 나눔도 하고 계시냐는 물음에
 
“안 사람이 두 아이들 이름으로 해외 아동 2명을 1:1 결연 후원하는 것 같더라”

며 멋쩍은 듯 웃으셨다.




큰 재력가가 아니어도, 가진 능력들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는 안경박사 하계점의 안경사분들.
이토록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기에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더욱 밝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얘들아, 이제 칠판도 더 잘 보이니까 공부도 더 열심히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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