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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인 후원자가 아동에게 보낸 편지 보고 한참 울었어요"


굿네이버스 번역봉사자 3인 인터뷰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전공 활용한 봉사활동
번역 봉사로 해외 후원아동과 국내 후원자 연결 다리 역할해


"재능을 녹슬지 않게 하고, 그 재능 덕분에 남을 도울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죠."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에서 번역봉사활동을 하는 이정이(33·초등학교 영어교사), 민세연(29·하나카드 업무팀 해외파트), 현다정(25·서울대 국제대학원)씨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2010년 시작된 굿네이버스 번역봉사자 모임 'I'm your PEN'을 통해 '재능'을 '나눔'으로 이어간다는 점이다.

굿네이버스 번역봉사자들은 총 1732여명, 지난 6년간 이들의 손을 거쳐 번역 및 검토된 해외 후원 아동과 후원자들 간 서신은 62만여 통에 이른다. 번역봉사자들은 20만여명의 해외 후원 아동과 후원자들의 든든한 '연결 다리'인 셈. 지난달 22일 한자리에 모인 3명의 번역봉사자는 수많은 편지를 들여다보며 웃고, 울었던 사연을 들려줬다.

 

▲굿네이버스 번역봉사자인 (왼쪽부터)현다정, 민세연, 이정이씨 세 사람은 한국 후원자들의 편지를
각자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해 후원 아동에게 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 굿네이버스 제공



◇꼭 몸을 써야 봉사? 우리는 '번역봉사'가 딱!

"직접 만나고 몸을 써야 진짜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번역봉사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봉사도 각자 잘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요. 번역봉사는 '꼭 맞는 옷'같이 느껴져요."

현다정씨는 올해로 3년째 스페인어 번역봉사를 하고 있다. 과테말라, 칠레 등 중남미를 후원하는 한국 후원자의 편지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후원 아동들에게 보낸다. 서울대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현씨에겐 제격, 덕분에 봉사에 자신감이 붙었다. "이전엔 희망의 산타 단기봉사나 시각장애인 캠프 보조, 복지관 봉사활동이나 도시락 배달 같은 봉사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손재주가 없어서, 열심히 할수록 되레 더 못하고 속만 상했죠. 한 번은 복지관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직원분이 '청소는 자기가 할 테니 문서 작업(워드와 엑셀)을 좀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각자 잘하는 것을 해야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녀는 곧장 '외국어번역봉사'를 수소문해 굿네이버스 번역봉사를 시작했다.

민씨도 사정이 비슷했다. "회사에서 무료 급식 배식, 김장 담그기 등을 하고 나면 며칠을 앓고 오래 못하더라고요. 꾸준히 잘할 수 있는 봉사를 찾다, 처음 굿네이버스에서 후원하는 아동에게 온 편지와 번역본을 받아보고 '이거다' 했죠." 민씨는 모집 기간만 1년 가까이 기다려, 2011년 영어번역봉사를 시작했다.

6년 전부터 영어와 함께 프랑스어 번역봉사도 하고 있는 이씨는 처음 봉사를 시작할 당시, 둘째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어렸을 때 고모가 아동 후원을 하고 있어서 '나도 어른이 되면 후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2005년부터 결식아동을 돕기 시작했어요. 소식지를 보다가 번역봉사자 모집을 보고 '시간을 뺄 수는 없지만 재택으로 할 수 있는 봉사니까 할 수 있겠다' 싶어 신청했어요." 이씨는 "덕분에 집안에서도 나눔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퇴근 후·점심시간 쪼갠 '나눔', 일상에 가장 큰 '활력'

세 사람은 일주일마다 평균 대여섯 통, 많게는 30여 통에 달하는 편지를 번역한다. 바쁜 일상을 쪼개서라도, 번역봉사를 미루는 법이 없다. 이씨는 퇴근 후 아이를 유치원에 데리러 가기 전, 민씨는 점심시간을 활용해 번역봉사를 한다. 현씨는 번역할 편지가 오는 월요일 오전을 아예 비워둘 정도. 이런 나눔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파됐다. 민씨의 회사 동료들은 점심시간 번역봉사 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해외 아동 후원을 알게 됐고, 후원에 동참했다. 이씨와 변씨의 부모 역시 딸들의 활동을 보고 해외 아동 후원자가 됐다.

가장 변한 것은 세 사람 스스로다. 재능을 '조금' 나눴을 뿐인데, 삶 전체의 활력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민씨는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번역할 편지를 열어본다"고 웃었다. "암 투병 중인 후원자가 힘든 투병 생활을 적으면서 후원 아동은 더 힘들 거라 걱정하던 편지를 보고 한참을 울었죠. '세상에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느끼면, 다시 힘이 납니다." 이씨 역시 "'너를 만나러 간다'라고 쓴 후원자의 편지에는 후원 아동을 만날 설렘이 가득해 나까지 다 떨렸는데, 몇 달 후 소식지에서 정말 두 사람이 만난 사진을 보니 덩달아 반갑고 기뻤다"며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처음 번역봉사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할 당시 아기 띠를 두르고 왔던 이씨는 이제 8세가 된 딸이 커서 '모녀 번역봉사자'가 될 날을 벌써 꿈꾸기도 한다.

나눔에 대한 마음도 커졌다. 현씨는 "후원자와 후원 아동 간 사연을 매일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며 "대학원에서 중남미 지역학을 공부 중인데 처음엔 무역 분야에 관심을 두다 번역봉사를 하며 지역개발 분야 전문가를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꿈' 전달하는 편지… "자주 써주세요"

애정이 커질수록 번역물에 대한 영향력과 책임을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는 세 사람. 현씨는 "후원금으로 아이들의 배를 채울 수도 있지만, '뭐가 되고 싶은지' 묻고 '더 큰 꿈을 꿔보라'고 제안하는 말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갖게 한다"며 "그만큼 편지의 힘이 크기 때문에, 번역 때마다 문법이 맞는지, 실제 쓰이는 표현인지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이씨도 혹시 지명 등의 철자가 틀릴까 봐 꼭 표준 표기법 등을 찾아 확인한다. 번역자마다 철자를 다르게 쓰면, 아이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후원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있지 않았다. 현씨는 "후원자들 중 자녀에게 편지를 써보게 하거나 영어 연습 삼아 써보는 경우도 많은데, 내용을 알아볼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이씨는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등을 사용하는 국가는 언어에 남녀 구별이 중요한 만큼 '여동생인지 남동생인지' 등 정확한 성별을 밝혀 달라고도 했다. 끝으로 이씨는 어떤 편지든 '자주, 많이' 써달라고 했다."후원자들의 편지는 처음 쓰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음껏 아이들에게 자주 편지를 보내주세요. 저희가 다 번역해드리겠습니다."


강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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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 20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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