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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동 학대 문제, 국가가 나서라”

2016.03.31
[Cover Story] 아동 학대 현장 20년, 굿네이버스 김정미 아동권리사업본부장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학대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존중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종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엄마들에겐 조금씩 죄책감이 있다. 울거나 떼쓰는 아이에게 가끔 화도 내고, 신경질도 부린다. 아이를 너무 사랑함에도 그렇다. 아동 학대 사건이 터지면, 엄마들은 분노로 치를 떨지만 또 그만큼 안타까워한다. '그 부모와 아이들은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하고. 아동 학대가 핫 이슈로 떠오르다가 식은 게 벌써 몇 차례다. 극악무도한 사건 중심의 뉴스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동 학대 이슈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간다. 이런 밀물과 썰물을 무려 20년째 경험한 사람이 있다. '아동 학대'라는 말이 법에 명시되기도 전인 1996년부터 매 맞고 죽어나가는 아이들 곁을 지켜온 '엄마', 김정미(46·사진)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범정부 아동 학대 예방·근절 대책을 조속히 수립하라"고 말한 22일 "아동 학대라면 며칠 밤이 새도록 얘기할 수 있다"는 그녀와 마주앉았다.

 

아동 학대 최근 이슈됐지만 언론에 보도 안된 사건도 많아…

―예전에 아동 학대 취재를 위해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을 만나고 온 취재기자가 "현장에 너무 충격적인 사례가 많아, 그걸 보고 나니 도저히 아기를 못 낳을 것 같다"고 트라우마를 호소하더라. 어떻게 20년씩이나 있었나.

"뭘 몰랐으니까. 1996년 굿네이버스 아동 학대 상담센터가 문을 열었는데, 발령받고 나서야 실감이 나더라. 한번은 다섯 살짜리 아이가 아버지한테 몇 시간 동안 맞아서 머리부터 발등까지 피부가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 병원 치료를 끝내고 나니 아이를 보낼 곳이 없었다. 일시보호소는 오후 4시 반 넘으면 아이를 안 받고, 보육원에 보내려면 절차 밟는 데 한참 걸린다. 결국 우리 집밖에 없었다. 불안에 떠는 아이를 내가 침대에서 데리고 자고, 남편이 우리 딸아이를 재웠다. 상담원들이 대부분 그렇게 살았다. 2001년 봄에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쉼터가 만들어졌으니까."

―자식 있는 엄마이다 보니, 이런 사례를 한 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 터질 것 같다. 근데 꽤 담담하다.

"처음엔 목이 메고 화가 나서 목소리가 막 올라갔는데, 이제는 덜하다. 구출돼 치료받고 좋아진 아이들을 자주 봐와서 그렇다. 아까 그 아이는 성추행도 당했는데, 처음 몇 개월은 말없이 그림만 그렸다. 형태 없이 두 가지 색깔을 막 칠하더라. 소아우울증, 만성 스트레스 증후군이었다. 5개월이 지나니까 말문을 열었다. 우리 아이들은 탄력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많이 본다."

―최근 끔찍한 아동 학대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데, 예전보다 더 심각해지는 건가.

"아니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아동 학대 사건 중 끔찍한 것도 많다. 극소수만 보도된다. 최근 국민의 '아동 학대 민감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흔히 언론에 나온 끔찍한 학대 사건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가정 내 학대가 많다. 한 부모가 자기 아이를 학대한 어린이집 교사를 신고했다. 조사하다가 아이한테 '혹시 너를 아프거나 힘들게 한 사람이 있니'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엄마가 나를 때렸어요'라고 했다. 부모한테 확인하니, 난리가 났다. '어린이집 교사 조사하랬지, 왜 부모인 나를 조사하느냐'고. 나는 부모니까 아이에게 함부로 하는 건 당연하고, 타인에 대해서만 엄격한 경우도 많다."
 

아동 학대의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자녀 양육기술 부족,
최소 産前 부모교육 의무화해야…

―아이들을 학대하는 이유, 그 부모의 심리는 무엇인가. 가난하고 사는 게 힘들어서인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부모에게서 학대가 더 많이 발견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자녀를 양육하는 기술이 부족해서다. 부모가 되기 전, 자기 부모한테서 보고 듣고 자란 양육 모델밖에 없지 않은가. 이후 부모 역할을 학습해볼 기회도 없다. 이뿐 아니라 부모 자신이 성장 과정에서 가진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이를 학대한다. 분노, 실패감, 우울, 위축되어 있는 자아가 내 안에 있다고 하자. 근데 막 태어난 갓난아이가 자꾸 운다. 아이는 울음으로 자기의 요구 사항을 표현한다. 사랑의 눈길로 봐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다.
 
출처 : 영화 '너는 착한 아이'
아이가 기저귀에 똥을 싸도, 습진이 생겨도 무기력하게 그냥 두는 엄마도 많다. 한번은 아동 방임으로 신고된 집을 찾았는데, 방 안의 이불을 들춰보니 죽은 쥐와 쥐똥이 바닥에 가득하더라. 이 외에도 회사 CEO나 오피니언 리더처럼 겉으로 멀쩡하지만, 집안에서 무척 권위적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유형도 있다. 10년 전부터 계속 얘기해온 건데, 최소한 아이를 낳기 전 '산전(産前) 부모 교육'은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으면 좋겠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우리나라 아동보호전문기관 민간 NPO 위탁 운영 시스템,
상담사 트라우마 치료까지 민간이 부담… 과연 맞는 일일까

―아동 학대가 아예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사건이 재발돼선 안 되지 않은가. 그동안 현장에 있으면서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처음 업무를 할 땐 자괴감이 엄청났다. '이 아이한테 도움 줄 게 없구나' 하는 벽을 너무 많이 느꼈으니까. 내가 막무가내 같은 성격이다. 부모한테 욕먹고 몸싸움하는 한이 있어도 학대 부모로부터 아이를 구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다. 근데 한 아이가 그러더라. '선생님이 뭔데 나랑 엄마를 떼어놓느냐'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아이는 엄마한테 수도 없이 맞고, 깨물리고, 살이 찢겼던 애였다. 당시엔 아동 학대에 대한 인식도 약해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됐다. 아이 아빠는 '판사도 잘못 없다고 풀어주는데, 너희가 무슨 권리로 애를 빼앗아가느냐'며 휘발유통 들고 사무실에 쳐들어왔다. 겁이 나더라. 그래도 아이를 안 보냈다. '우리한테 저럴 사람이면, 이번에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이는 너무 오래 학대를 받아서 심리치료 기간도 길었다. 국가 예산도 없어 굿네이버스에서 후원금을 끌어다 아이 심리치료 비용도 댔다. 근데 아이가 날 원망하더라. '선생님 때문에 엄마랑 못 살게 됐다'고. 이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부모로부터 아이를 분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이 업무를 오래 하면 할수록, ‘아동 학대는 정말 복잡하고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구나’ 싶다. 한 아이 인생과 그 가정 전체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의 부담이 크다.”

―지금 우리나라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굿네이버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세이브더칠드런 등 민간 비영리법인에서 위탁받아서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아동 학대 업무가 워낙 강도가 세고 힘들다 보니, 민간에서 이를 운영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많다. 최근 한 지역에선 “도저히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맡기 힘들다”며 반납했고, 지자체에서 5차례나 위탁을 공고했음에도 맡겠다는 곳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운영을 계속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외부에선 이런 사정을 거의 모른다.

“우리 상담원들 너무 불쌍하다. 어제 지역의 한 상담원과 통화했는데, ‘학대 부모로부터 아이를 분리하려고 했다가 엄마한테 겁나게 맞았다’고 하더라. 학대 부모가 조폭이어서, 사무실에 ‘덩치’들을 보내 협박을 한 경우도 있었다. 상담원은 그 일로 너무 놀라 문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아예 일을 그만뒀다. 스트레스성으로 몸에 마비가 와서, 일을 그만둔 상담원도 있다. 국가도, 지자체도 예산이 없어 상담원들 트라우마 치료는 생각조차 못한다. 최근 굿네이버스는 법인이 직접 비용을 부담해 상담원들의 치료비를 책정했다.

사실 아동 학대 업무 현장을 못 떠나는 건 책임감 때문이다. 지금도 행방불명된 초등학생·중학생이 19명이나 된다는 소식에 밤잠이 안 온다. 혹시 우리한테 신고가 들어왔던 아이가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그 부담감은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 경찰도, 간호사도, 소방관들도 다 교대 근무가 있지만, 아동 학대 상담원들은 12~15명가량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야간 당직을 서도 교대 근무는 없다. 주말 당직까지 포함하면 어떤 날은 2주에 한 번 쉴 때도 있다. 이런 상황이니 다들 현장을 떠나려고 한다. 오늘 한 후배 상담원에게 ‘힘들지’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이렇게 답장이 왔다. ‘도망가고 싶어요’라고. 국가가 아동 학대 업무 현장을 이렇게 책임지지 않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굿네이버스 김정미 아동권리사업본부장

 

―그간의 오랜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우리나라 아동 학대 예방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꼭 바뀌어야 하는 제도는 무엇인가.

“국가가 더 개입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아동 학대 현장을 조사하는 일은 공공이 하고, 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지원과 사후 돌봄은 민간에서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현장조사는 학대 행위가 있었는지, 누가 학대를 했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했는지 등 학대 사실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다. 학대 아동의 심리를 치료하고 가족이 회복되도록 돕는 역할과 전혀 다르다. 지금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한다. 55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전국의 학대 아동을 다 맡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20년 넘게 민간에서 해오던 업무를 곧바로 공공으로 넘기기는 어렵지 않겠나. 아동학대특례법 이후 신고가 들어오면 반드시 경찰과 현장 동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을 대상으로 아동 학대 교육을 하는데 인사이동이 잦다 보니 매번 새로운 사람을 설득해가면서 일해야 한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미취학 아동 외에,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아동 학대 사각지대가 있나.

“학령기 이전의 아동은 더 걱정이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아이들도 꽤 많다. 2014년쯤이었나, 아예 호적도 없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버지가 빚에 쫓겨 여인숙과 고시원을 전전했었다. 숨어 살다 보니, 아버지가 아이를 방에 가둬놓고 지냈다. 의료보험이 안 돼 병원비만 해도 엄청났다. 임시 주민번호라도 받으려면 법원에 가야 하는데, 빚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등 문제가 아주 복잡했다. 게다가 아이가 7년 가까이 방에서 혼자만 지내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거나 상호작용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이런 아이들을 ‘쉼터’에서 도맡아 키워야 한다. 학대아동쉼터는 일반 그룹홈과 다르다. 신생아부터 18세 미만까지 학대 아동이 다 있고, 성 학대 피해를 입은 아이들도 있다 보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전문가들은 아동 학대는 국민의 인식이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인식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아동 학대를 완전히 막기는 힘들다. 아동 학대는 총체적인 문제라서, 다방면에서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든 것은 ‘인식 전환’이다. 각각의 단계에서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학대의 악순환이 무척 많다. 세대 간 전이(轉移)다.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아동이 부모가 되면 또다시 자식을 학대한다. 교육으로 끊어줘야 한다. 아동 발달단계에 맞게 타인에 대한 존중교육을 해야 하고, 혼전교육, 산전교육, 부모교육 등 성인 대상 교육이 더 많아져야 한다. 지금도 부모교육은 많지만, 안 받아도 될 사람만 받는다. 꼭 받아야 할 고위험군 부모들은 아무리 받으라고 해도 안 온다.

의사, 교사 등 신고의무자들에 대한 인식 개선도 강화돼야 한다. 아동 학대 위험이 높은 가정에 대해, 지역의 복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촘촘한 시스템도 필요하다. 하지만 예산이 늘기는커녕 줄고 있으니. 길거리에서 가끔 ‘제가 해냈습니다. 350억원 확보. ○○다목적홀 건설!’ 이런 플래카드를 보면 씁쓸하다. 우리나라는 아이들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보다 건물 짓는 게 더 중요한 나라인가 싶어서."

4시간 동안 김정미 본부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분노와 좌절 사이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아이를 낳기 전 아동 학대 업무를 시작했는데, 그 덕분에 아이한테 한 번도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거나 때리지 않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

고3, 중2인 두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잊었던 게 생각난 듯 한마디 했다.

“앗, 아까 어떻게 20년 동안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죠. 잘 잊어버려요. 부모님께서 저를 긍정적으로 키워주셨어요. 혹시 ‘내가 아빠니까, 내가 엄마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아이를 존중해주세요. 아이를 존중하는 게 항상 드러나야 합니다. 내가 화났다고 함부로 아이한테 퍼붓는 것, 부부 싸움 하고 나서 아이한테 감정 쏟아내는 것, ‘너 때문에’라고 아이 탓하는 것은 아이들 마음에 큰 상처를 줍니다. 저는 아이들 키우면서 3가지를 지켰어요. 솔직하게 얘기하기, 약속했으면 지키기, 잘못했으면 사과하기.”

참 쉬울 것 같은데 잘 안 되는 일. 바로 ‘좋은 부모 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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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란희 더나은미래 편집장